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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용칼럼]정치자금법 위반죄는 '들킨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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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무슨 죄가 됩니까? 굳이 말하자면 재수없게 '들킨 죄'지요."

지난주 전ㆍ현직 의원 서너명이 섞인 식사자리에서 한 전직 의원이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를 비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동석한 인사들 대부분은 씁쓸한 웃음으로 이 말에 동조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아직도 정치권 전반에 돈에 관한 음습한 관행이 온존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리스트 인사들 가운데 현재까지 정황증거가 비교적 다수 드러난 이 총리를 비롯한 3인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먼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사례. 성 전 회장은 2006년 10만달러를 당시 한나라당 전직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방독 시 수행단원이었던 김 전 실장에게 줬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사실여부는 미확인 상태지만 성 전 회장의 말은 당 중진 등의 해외 여행때 '장도(壯途)' 축하조로 봉투를 건네주는 관행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관행은 여의도 정가에 '미풍양속'으로 여전하다는 게 정설이다.

이어 이 총리의 '3000만원' 사건. 통상 국회의원 후보자의 경우 선거철에 후원계좌를 통한 공식 모금과 출판기념회와 사무실 개소식을 이용한 비공식 루트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성 전 회장은 2013년 보궐선거 당시 선거사무실 개소식 때 이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했다. 출판기념회에선 통상 10만원 내외의 봉투가 건네지지만 이권을 노린 인사나 기업인들은 더 큰 액수를 담기도 한다.
개소식 때도 그와 비슷하다. 특히 지방선거 출마희망자나 무언가 도움을 기대하는 인사 등이 주로 두툼한 봉투를 건넨다. 성 전 회장의 말대로라면 충청권의 친박 실세였던 이 총리에게 기업인 출신에 걸맞은 '1000만원 이상 억대 이하'에 해당하는 규모의 돈을 건넸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이 총리가 연루된 사건을 보면 여전히 선거 때면 비합법적인 정치자금이 다수 오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1억원 수수설. 성 전 회장은 2011년6월 한나라당 당대표 선거에 나선 홍 지사에게 경남기업 전 고문을 통해 1억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성 전 회장의 주장을 따르자면 당 대표 선거 때도 거액을 후원하는 게 관례였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중진의원들의 경우 정작 4년마다 실시되는 선거보다 당 대표 등 당내 당직 선거가 더 힘들다고 토로한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후원금도 많이 들어오는 데다 10%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면 공식 선거비용의 50~100%를 되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당내 선거의 경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돈을 써야 한다. 당 대표에 출마하면 전국 246개 지역구를 권역별로 나눠 순회하면서 해당 지역위원장과 대의원, 지역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식사 대접을 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이때 드는 밥값 등 경비가 억대 이상이 든다고 한다. 때문에 유력 당직 후보자에겐 차기 공천 희망자 등이 거액의 경비를 제공한다.

보궐선거에 나선 이 총리에 비해 3배가 넘는 돈을 건넸다고 주장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당내선거의 혼탁상은 이미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총선거 등은 선관위가 엄격하게 관리하지만 당내 선거는 선거법 그물망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성 전 회장은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했나,(…) 깨끗한 정부, 진짜 박근혜 대통령이 깨끗한 사람을 앞으로 내세워서 깨끗한 정부가 될 수 있도록 꼭 좀 도와주십쇼"라고 유언처럼 강조했다. 정경유착의 장본인인 성 전 회장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죽음으로써 더러운 정치관행의 척결을 주문한 그의 마지막 발언에서 우리가 깨쳐야 할 점은 부패정치의 민낯을 제도적으로 바로잡는 작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닐까.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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