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법안이 발의돼서 국회에서 부결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국회가 안고 있는 숱한 문제점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먼저 의원들의 불성실한 의정활동이다. 이 법안은 이날 찬성 83표로 의결 당시 출석인원(171명)의 과반수인 86표에 못 미쳐 부결됐다. 반대 42명, 기권 46명에 아예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은 무려 124명에 달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표결 당일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얼추 짐작이 간다. 당초 이 법안은 1월 초 정부와 새누리당의 발의로 시동이 걸렸는데 새정치연합도 곧이어 찬성키로 당론을 정했다. 이어서 상임위에서도 통과했기에 본회의 통과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법안이 부결되자 반대나 기권을 했던 의원들은 각자 이유를 대며 해명했다. 일부 의원들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며 소신을 갖고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반대한 이유는 최초 법안에서 상임위 등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보완됐음을 잘 알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는 의원들의 나태한 의정활동을 잘 드러낸다.
두 번째는 유권자들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오만한 시각이다. 법안에 반대한 의원들의 경우 소신을 가지고 반대한 경우도 있지만 일부 언론의 보도대로 어린이집총연합회 등 운영단체들의 집중적인 로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전국에는 모두 1만4000여개의 어린이집이 있는데 이들의 단합된 힘은 무시무시하다. 특히 선거를 치러본 의원들은 어린이집 운영자들의 막강한 조직력과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물론 부모들의 숫자가 더 다수이나 이들은 조직화돼 있지 않아서 그 위력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당장 내년 선거를 치러야 할 의원들로서는 조직된 단체의 힘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1년만 있으면 20대 총선이다. 유권자들이 국회의원들로부터 '망각의 동물'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정파적 판단에 휩쓸리기보다는 자신의 실생활과 국가의 장래를 위한 각종 법안에 대해 어떤 표결을 했는지를 기억했다가 이를 표로써 응징해야만 한다.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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