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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칼럼]새해효과 실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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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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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설렘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결심으로 시작할 수 있어 좋다. 다이어트, 금연, 취업, 결혼, 승진…. 기업들도 시무식과 함께 새 경영 구상을 다지고 주식시장이 반응한다. 이른바 '새해효과'다.

그런데 올해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1월 하순인데 사람들은 벌써 몇 달 지난 것 같다며 피곤해 한다. 지난해 11월 말 불거진 청와대 문건 파동이 해를 넘기며 대통령 측근과 동생까지 연루된 권력 내부의 암투와 치부를 드러내 정치 혐오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기대를 걸었다. 속사정이 있으리라. 대통령이 툭 털어 놓고 쇄신책을 밝히리라. 광복 70주년, 한일수교 50주년의 해에 국내외 7000만 동포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리라. 그러나 박 대통령은 뭐가 문제냐며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 등 측근들을 감싸기 바빴다. 동북아 평화 구상이나 '새로운 70년'의 청사진도 없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미약한 새해효과마저 반감시켰다.

게다가 청와대 문건의 배후로 여당 대표를 지목한 청와대 행정관의 발언이 당청 관계를 흔들었다. 정치를 거론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연말정산을 하면서 정부 설명과 달리 불어난 세금에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가까스로 30%에 턱걸이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로 나타났다.

물론 대통령 회견으로 새해효과를 끌어올린 나라도 있다. 지난 2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자신감이 넘쳤다. 상ㆍ하원 모두 공화당이 장악한 여소야대 의회를 압도했다. 그 뒷배는 세계에서 거의 홀로 활황세인 미국 경제다. 연설 내용도 알맹이가 있었다.
"몇몇 소수에게만 좋은 경제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노력하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소득을 높이는 경제에 충실할 것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중산층 경제다."

미국 방송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8명이 합격점을 주었다. 고무된 오바마는 전국 로드쇼에 나섰다. 유튜브를 활용해 누리꾼과 격식 없는 인터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중산층 경제론'의 원조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경제적 약자들의 꿈이 다시 샘솟게 하겠다"며 경제민주화를 외쳤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 대기업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제치고 중소기업중앙회부터 찾았다. '중소기업 중심 경제' '중산층 복원'을 강조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목소리가 작아지고 구호도 변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까지 보수와 진보로 쪼개져 대립한 한국 사회에 화해와 치유, 사랑의 큰 울림을 준 프란치스코 교황.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황청 성직자들에게 일갈했다. 자기 자신에만 몰두하는 '영적 치매'를 경계하라고. 우리 정치권도 선거 때만 부르짖다가 이내 잊어버리는 집단 '정치적 치매'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 신년회견 이후 지지율이 급락한 것은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국민의 새해효과를 저하시키고 국정 추동력도 약화시킨다. 1월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연말정산 환급금이야 법을 고쳐 소급적용도 한다지만, 빼앗긴 1월과 새해효과는 금전환산도 소급적용도 어렵다. 해결책은 남은 11달 동안 국민을 더 이상 실망시키지 않고 정치를 잘하는 것이다. 다시 기대를 갖게 하고 감동을 준다면 더욱 좋고.

총리를 바꾸면서도 청와대 개편은 시늉만 하는 인적 쇄신으로는 국민의 빼앗긴 1월을 보상하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에겐 아직 설이 있다. 등 돌린 민심을 붙잡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놓치지 말라. 더욱 과감한 인적 쇄신과 국정혁신으로 설날에 국민이 다시 희망을 말하게 하라. 과거회귀적이고 때 묻은 인물로는 경제를 살리기도, 새로운 미래를 열기도 어렵다. 대통령이 마음을 닫아건 채 민심을 외면하면 지도자도, 국민도 상처만 커진다.
ja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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