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부산에서 10남매 중 9째로 태어난 이태석은 10세에 아버님을 여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많은 아이들을 낳고 바느질로 아이들을 기르느라 약해진 어머니를 생각해 이태석은 의대에 진학합니다.
오랜 내전으로 남부 수단 사람들의 삶은 말그대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습니다. 굶주림과 죽음, 절망의 땅에 의사이자 신부 이태석은 웃음과 노래와 희망을 심었습니다.
흙담과 짚풀로 지붕을 엮고 병원을 세웠습니다. 우물을 파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차례로 개설했습니다. 그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마을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그곳 주민들에게 이태석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외부인 이었습니다.
그는 건강을 회복해 아프리카로 돌아가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는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15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대부분 생전에 그를 만난적이 없었던 분들이었습니다. 수단에서도 '친구'들이 달려왔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만든 브라스밴드의 음악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를 아버지로 부르는 수단 아이들의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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