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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얼굴 빨개진 금강산 '오빠'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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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양재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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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가을 금강산 관광길에 안내원에게 들은 실화다. 서울에서 온 여고생 수학여행단이 삼일포해수욕장을 향해 버스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 여학생이 갑자기 창문을 열고 경계 근무 중인 북한군 초병을 향해 소리쳤다. "오빠~!" 안내원으로선 문책감이었다. 당시 관광객들에게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삼가도록 주의시키던 상황이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별 얘기가 없더라고요. 그 병사가 상부에 보고를 안 했나 봐요. 그러고 보니 그때 스물도 안 돼 보이는 초병 얼굴이 빨개져 있었어요."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금강산 관광을 통해 동질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남북의 또 다른 접촉점은 개성공단. 통일 선진국 독일이 부러워하는 자본주의 학습장이다. 7선의 독일 연방하원 의원 하르트무트 코시크는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포럼에서 개성공단 방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공단에서 일하는 북한인 한 명 한 명이 혁명적 변화를 체험하고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세계 경제의 경쟁체제에 맞춰 일하는 게 뭔지를 학습하고 있었어요."

분단 시절 독일에도 개성공단 같은 곳이 있었다면 동ㆍ서독의 경제ㆍ사회 통합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충격을 줄였을 거라고 했다. 동독 출신이 통일 이후 상황에 실망해 옛날을 그리워하는 '오스탈기(Ostalgie)' 현상 극복에도 보탬이 되고. 통일을 먼저 경험한 독일이 우리가 모르는 개성공단의 가치를 깨닫게 했다.
분단 44년 만인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은 서독이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사회문화적 교류협력을 '단계적'으로 '일관성' 있게 전개한 결과다. 이른바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이 진보 성향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에서 헬무트 슈미트로, 헬무트 슈미트에서 보수 성향 기민당의 헬무트 콜로 이어져 마침내 통일은 콜 총리 시대에 이뤄졌다.

우리는 어떤가. 어렵사리 접근을 통한 변화 채널은 마련했다. 그러나 교류협력은 단계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않다.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10ㆍ4 남북공동선언은 정권이 바뀌자 퍼주기 논란 속 빛이 바랬다. 금강산관광은 2008년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6년째 중단 상태다. 가동 10년째인 개성공단은 지난해 일시 폐쇄의 위기를 겪었다.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남북 교류협력 정책이 절실하다. 연초 박근혜 대통령 기자회견에서의 '통일은 대박' 의지 표명만으론 부족하다. 북한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비정치군사 부문, 사회문화 분야의 접촉을 늘려가야 한다. 독일도 부러워하는 개성공단 같은 남북합작 공단은 많이 둘수록 좋다.

박 대통령이 지난 3월 회심의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으나 북한은 즉각 반발했다.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공동 인프라 구축, 동질성 회복 등 3대 제안은 훌륭했다. 문제는 제안의 도입 부분이었다.

"외신보도를 통해 북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경제난 속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리에 방치돼 있었고, 추위 속에서 배고픔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실상이 그렇다 해도 세계의 시선이 쏠린 독일 방문길 연설에서 북한 정권의 무능을 꼬집은 뒤 제안하면 선뜻 받아들이겠는가.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여를 협의하던 남북실무회담이 결렬됐다. 결렬 사유는 체류비용 지원과 인공기 사용 문제. 사실 그동안 북한 응원단의 체류비용은 우리가 부담해왔다. 응원단이 대형 인공기를 사용한 적은 없다. 통 크게 지원하고 반기자. 마침 응원단에겐 개성공단 내 우리 7개 의류업체 공동 브랜드 '시스브로' 단체 복장을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시스브로는 자매(시스터)와 형제(브러더)의 합성어다. 남북 간 잦은 교류와 접근을 통한 변화는 북한이 걱정할 일이지 우리가 염려할 일은 아니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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