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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칼럼]대통령 기자회견 방식을 '정상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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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양재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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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30일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 기자회견을 했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유치를 자랑스러워했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대통령의 모두발언 이후 기자들과 문답이 이어졌다. 청와대 기자들은 G20 의제와 친서민정책, 개헌론, 북핵 문제 등을 물었다.

뭔가 이상했다. 당시 정국의 쟁점이었던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문제를 묻는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비밀은 금방 들통났다. G20 정상회의 유치 의미가 희석될 것을 우려한 청와대가 세종시 관련 질문을 말아달라고 요청했고 기자단이 이를 수용했던 것이다. 청와대 뜻대로 이날 기자회견은 'G20 유치 보고대회'로 치장됐다.
대통령 회견은 대통령이 말하고 싶은 것만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언론이 대신 묻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것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언론의 소임이요, 기자의 책무다. 정권에 부담스럽거나 대통령이 꺼리는 것을 묻지 말라고 요청한 권력이 문제지만, 이에 순응해 한마디도 묻지 않은 언론 또한 직무유기였다.

함정은 대통령 회견 때 질문 수와 내용, 질문자를 사전 조율하는 관례에 있다. 제한된 시간에 중복 질문을 피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라지만, TV 생중계로 이뤄지는 회견에서 돌발 질문을 원천 차단하기 위함이다. 분야별로 나눠 정한 10개 안팎 질문만 하는 방식으론 대통령과 기자 간 논쟁은 기대하기 어렵다. 선정되지 않은 기자는 질문 기회조차 없다. 짜인 순서와 내용대로 회견이야 매끄럽게 진행되겠지만 생방송의 생동감은 떨어진다.

미국 백악관의 대통령 회견에도 나름 관행은 있다. 통상 AP통신을 필두로 대통령이 유력 매체와 고참 출입기자들 순서로 지목하면 질문한다. 그러나 미리 질문 내용을 조율하거나 순서를 정하진 않는다.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틈을 주지 않고 후속 질문을 해댄다. 사안에 따라 대통령과 기자들이 설전을 벌인다.
50년 동안 출입하며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 헬렌 토머스. 대통령을 불편하게 하는 공격적 질문으로 유명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가 뭔가. 석유냐, 이스라엘이냐"고 돌직구를 날려 쩔쩔매게 만들었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는 말을 남긴 그가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녀는 나를 포함해 대통령들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미국 대통령은 기자들과 자주 회견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첫 임기 4년 동안 78차례 회견했다. 월평균 1.6회다. 그래도 회견이 적다고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불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년이 다 되도록 회견을 하지 않았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도 '비정상'이다. 장ㆍ차관급 인사의 낙마가 줄을 잇던 지난해 3월에도 비서실장의 '17초 대독 사과'로 갈음했다.

오늘 마침내 박 대통령이 첫 회견을 했다. 언제까지 질문 내용을 사전 조율할 것인가. '듣기 좋은' 질문에 미리 준비한 '하기 좋은' 답변만으론 국민의 갈증을 달랠 수 없다. 껄끄러운 즉석 질문을 받고, 답변이 미진하면 보충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설전이 벌어지고 얼굴 붉히는 일도 용인해야 한다. 언론도 권력과 좋게 지내려는 기자단 문화를 깨야 한다. 형식은 투박해도 내용이 알차야 진정성이 통하고 결과적으로 회견자인 대통령에게도 이득이다. 회견은 더 자주, 그리고 길게 해야 한다. 정례화도 방법이다. 회견을 자주 하면 대통령도, 언론도, 국민도 새로운 방식에 익숙해진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 대통령 회견부터 취지에 맞게 정상화하자.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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