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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詩]박용하의 '감식안에 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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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란 영화가 있지/그 영화에/----나는 길의 감식가야/평생 길을 맛볼 거야----/그런 기막힌 언어의, 독백의 길이 있지/길이 있는 영화는/(……)/무엇을 감식한다는 것/가령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그건 그대를 최고로 맛볼 줄 안다는 것이지/그대의 자존심을 최고로 지켜준다는 것이지/그대의 오르가슴을 절정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이지//난, 너의 가장 뛰어난 감식가야/그게 사랑이지

박용하의 '감식안에 관하여' 중에서

■ 어린 시절, 병아리감별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던 때가 있었다. 갓 태어난 병아리의 암수를 구별해내는 솜씨를 지닌 사람. 감별이란 말에는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이 서성거린다. 숨어있는 무엇인가를 알아채는 촉수가 한 줄기 실오라기 끝처럼 돋아나 움직인다. 병아리를 만지는 감별사의 손이, 아직 경계가 불분명해보이는 성(性)의 기호를 귀신같이 붙잡아내는 일은 참 멋지지 않은가. 이 시는 감별(鑑別)의 4촌쯤 되는 감식(鑑識)이란 말에 대한 경탄이다. 감별이 차이를 알아채는 것이라면, 감식은 복합적인 무엇을 파악해내는 것이다. 골동품을 감식하는 사람은 그 물건의 가치를 알아낸다. 음식을 감식하는 사람은, 그것의 맛과 미묘한 특징을 알아낸다. 박용하는 감식 중에서도 음식을 감식하는 안목에 대해 풀어가고 있다. 그런데 감식이란 말이 지닌 예민한 촉수와 안목을 도입하면 이렇게 풍성한 사랑의 표현도 되는구나. 한 사람에 대해 고도의 감관을 가진 감식가가 되는 일. 그것이 바로 사랑에 빠지는 일이 아닌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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