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과 세 번째로 만났다. 서열 2위 리커창 총리와는 EAS에서 번개 모임도 했다. 그런데 아베 총리와는 이따금 말을 걸어와도 데면데면했다. 중국과 가깝고 일본과는 멀어진 '근중원일(近中遠日)' 양상이다. 이러다간 한일 정상이 취임 첫 해를 회담 없이 보낼 것 같다.
이웃한 두 나라가 함께 풀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북핵문제 해결을 비롯한 동북아 안보체제 구축에 양국 협력은 필수다. 우리가 몇 발 앞선 자유무역협정(FTA)이든, 미국ㆍ일본이 손잡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이든 경제교류는 계속 확대되어야 한다. 교역규모나 여행객 왕래로도 몰라라 할 수 없는 관계다.
국제회의장에서 서먹해하는 한일 정상의 모습에 양국 국민은 답답하고 걱정스럽다. 국민 손으로 뽑은 국가수반인 대통령과 총리는 모름지기 개인의 역사인식이나 호불호를 떠나 국익과 국가 장래를 중시해야 한다. 비정상적인 한일 관계는 양국 모두에게 손해다.
과거사에서 자유로운 박근혜 대통령은 통 크게 손을 내밀 때다. 사정이 어떻든 다자회의에서 마주친 타국 정상을 외면하는 것은 속 좁은 처사다. 상대방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대화도 없다는 식의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짢아도 웃으며 악수하고 대화하는 게 외교요, 정치다. 상대가 있는 외교에서 100을 다 얻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보이는 외교채널'과 '보이지 않는 외교채널'을 함께 가동해 양국 관계를 개선시켜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G2가 격돌하는 국제무대에서 우리로선 실익을 취하는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도 한미일 삼각동맹을 지켜나가야 한다. 일본의 행동이 밉다고 없는 듯 무시하고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 늦기 전에 양국 정상이 만나 대화하라. 얼굴을 맞대고 따질 것은 따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라. 한 번 만남으로 현안이 풀리지 않을 수 있다. 자주 만나라. 그래서 관계 정상화는 물론 양국 간 미래 비전을 논하라.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것이 '비정상의 정상화' 아닌가.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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