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3년 임기 만료가 되는 130여개 공공기관장 자리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치열한 자리다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주로 정권 창출에 기여했거나 줄섰던 사람들에게 마지막 논공행상이 될 기회로 예상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이들 기관장의 채용공고를 그대로 믿고 응모했다가는 바보소리 듣기 십상이다. 지원자들이 여럿 나서 경쟁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정부에 끈이 있는 인사 중에서 낙점되기 마련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사실 대통령 당선을 위해 도왔던 사람들에게 일정한 자리를 제공하는 논공행상의 수요를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대가 없이 자발적인 선거운동만 기대하는 것은 이상론에 불과하다. 또 '코드 맞는' 인사들이 정부와 공기관 요직에 가서 정부와 함께 일하면 일관성과 속도감이 나는 효율성도 있을 것이다. '코드'란 말은 노무현 대통령 때 성행했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연초에 '팀워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논공행상이 필요하고 봐줘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우리나라도 공식적으로 '엽관제(獵官制ㆍspoils system)'를 도입할 만하다. 정권창출에 대한 공헌이나 정당에 대한 기여도 등을 감안해 공직을 주는 것을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논란은 있지만 실제 공공기관장 임명 때 엽관제로 운영하면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장해 국민의 불신을 사는 것보다 낫다.
미국은 정부의 국장급 자리까지 대통령이 물갈이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를 본뜨기는 어렵다고 해도 새 정부가 들어설 때 구체적으로 어느 자리를 바꿀 수 있는지를 정하고 그 숫자도 확정지으면 좋을 것이다. 교체 가능한 기관의 직급을 정하면서 그 숫자를 예컨대 2000개나 5000개로 확정지으면 된다. 그런 자리는 공모를 거치지 않고 임명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지나친 줄서기를 막는 장점이 있고 하위직까지 차지한다는 오해도 해소할 수 있다. 각 기관이 형식적인 공모를 위해 들이는 광고비와 인선절차에 소용되는 비용도 아낄 수 있다. 다만 정치적인 인사들이 감사나 사외이사 등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해 경영견제 기능을 살려주면 좋을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공기관장 논공행상의 진통 속에 국회와 정부가 본격 제도 개선을 논의해볼 만하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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