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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칼럼]이러려면 '엽관제'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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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전직 언론인은 공기관의 과장급 자리에 응모하려다 '점 찍어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했다. 조카가 어느 공공 연구소의 연구원 자리에 응모했다가 소문이 돈 사람으로 결정되더라고 분노하는 기업인도 있다. 이들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까운지는 모르지만 당사자들은 요즘 낙하산 인사가 하부직까지 내려왔다고 믿고 있다. 그만큼 공기관의 인사 공정성은 의구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연말까지 3년 임기 만료가 되는 130여개 공공기관장 자리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치열한 자리다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주로 정권 창출에 기여했거나 줄섰던 사람들에게 마지막 논공행상이 될 기회로 예상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이들 기관장의 채용공고를 그대로 믿고 응모했다가는 바보소리 듣기 십상이다. 지원자들이 여럿 나서 경쟁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정부에 끈이 있는 인사 중에서 낙점되기 마련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공기관의 경우 '공정'과 '능력' 기준은 친정부와 정치권 인사 중에서 고를 때 적용될 뿐이다. '낙하산'이란 말이 수십년 전부터 나오고 '공정인사'를 강조해도 별로 바뀐 것은 없고 어느 정권이나 정도 차이일 뿐 비슷하다.

사실 대통령 당선을 위해 도왔던 사람들에게 일정한 자리를 제공하는 논공행상의 수요를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대가 없이 자발적인 선거운동만 기대하는 것은 이상론에 불과하다. 또 '코드 맞는' 인사들이 정부와 공기관 요직에 가서 정부와 함께 일하면 일관성과 속도감이 나는 효율성도 있을 것이다. '코드'란 말은 노무현 대통령 때 성행했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연초에 '팀워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논공행상이 필요하고 봐줘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우리나라도 공식적으로 '엽관제(獵官制ㆍspoils system)'를 도입할 만하다. 정권창출에 대한 공헌이나 정당에 대한 기여도 등을 감안해 공직을 주는 것을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논란은 있지만 실제 공공기관장 임명 때 엽관제로 운영하면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장해 국민의 불신을 사는 것보다 낫다.
엽관제를 도입하되 대통령이나 정부가 공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를 확정지으면 된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치적 직위는 1000여개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는 자리는 80여개라고 한다. 여기에다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공기관장 자리가 286개다. 또 요즘 보듯 정부는 공기관의 감사와 사외이사까지 친정부 인사로 채우고 있다. 도대체 정부에서 인사권을 행사하는 자리가 정확히 몇 개인지도 파악하기 힘든 것은 문제다.

미국은 정부의 국장급 자리까지 대통령이 물갈이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를 본뜨기는 어렵다고 해도 새 정부가 들어설 때 구체적으로 어느 자리를 바꿀 수 있는지를 정하고 그 숫자도 확정지으면 좋을 것이다. 교체 가능한 기관의 직급을 정하면서 그 숫자를 예컨대 2000개나 5000개로 확정지으면 된다. 그런 자리는 공모를 거치지 않고 임명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지나친 줄서기를 막는 장점이 있고 하위직까지 차지한다는 오해도 해소할 수 있다. 각 기관이 형식적인 공모를 위해 들이는 광고비와 인선절차에 소용되는 비용도 아낄 수 있다. 다만 정치적인 인사들이 감사나 사외이사 등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해 경영견제 기능을 살려주면 좋을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공기관장 논공행상의 진통 속에 국회와 정부가 본격 제도 개선을 논의해볼 만하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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