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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경제레터]G20정상회의와 구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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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두 가족’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곳. 서울 개포동의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과 길 건너편에 우뚝 솟은 도곡동의 고층아파트군들입니다. 대모산과 구룡산으로 연결된 산자락 아래 공생하는 남루한 구룡마을은 강남구와 어색하게 공존하는 오지로서 ‘저주받은 마을’이죠.

며칠 전 석양 무렵 하산 길에 본 마을입구는 전투를 준비 중인 듯 긴장감으로 충만했습니다. 수백명 주민들이 모여서 박수를 치며 무슨 결의문을 낭독하는 버스주차장 부지와 그 근처를 분주하게 드나드는 사복경찰들에게서 팽팽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따금 순찰차의 붉은 경광등은 밤길에 윙크를 하고… .
대통령이 직접 '공정사회'를 표방한 지 얼마 안된 마당에, 자칫 없는 사람들을 건드리거나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심성이 무전기의 교신 볼륨을 한껏 줄였습니다. 좁은 길목엔 붉은 페인트의 공격적인 필체로 흘려 쓴 몇 개의 선동문구가 즐비합니다.

“우리는 이미 전과자다 감옥이 두렵지 않다”는 협박성 구호와 “오직 죽음으로 마을을 사수한다”는 비장한 최후통첩도 보이고, “벌써 용산사태를 잊었느냐? 우리는 준비가 다 되었다”며 경찰의 자제를 촉구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G20 서울 정상회의 기간에 구룡마을을 관광코스로 삼자"는 조금은 애교가 있는 문구도 보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G20정상회의 기간 개막식에 맞춰 망루위에 큰 불을 피워서 그 검은 연기가 멀리 떨어진 삼성동의 국제회의장까지 도달하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보상요구를 무시한 채 공영개발로 마을이 사라지는 상황을 널리 호소하기 위한 초대형 비폭력 이벤트인 셈입니다. 핍박받는 가운데서 그런 기발한 발상을 떠올려 실행하려는 집단의지에 대해 한편 연민의 감정이 들지만, 참으로 나라의 체면이나 시민의 도리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무뢰한 집단이란 생각도 듭니다.

주민들이 그런 식의 막장 투쟁을 선택하기까지 수십년 동안 서울시와 강남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G20 정상회의처럼 구룡마을 주민 자치회 홈페이지까지도 있는데. 삼성동 코엑스 부근 상가들도 신경이 날카롭기는 마찬가집니다.

작은 사고라도 발생하면 주최국으로서 짊어져야할 부담이 크기에, 우리 경찰력이 예방적 기능을 앞세워 불필요하게 작전범위를 넓혀 시민생활을 통제하려들고 있다는 불만이 무성합니다. 안전이 우선이지만 그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 정부가 시민들로부터 더 큰 반발을 자초한다면 원상회복이 힘들겠지요.

불과 넉 달 전에 여당이 어렵게 승리한 서울시장 선거결과를 생각해서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바리케이드로 통제된 축제보다는 동참하는 축제로 마인드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구룡마을 주민들. 처음엔 그들도 인천 부둣가에서 하역작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의 젊은 시절, 리어카로 이태원 시장의 쓰레기를 나르던 20대의 MB, 공사판에서 등짐을 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년기와 하등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이후 이 소외받은 주민들과도 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정도의 지극한 정성으로, 상생을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시도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대우가 보상보다 선행될 때 비로소 마음을 열 수 있겠지요. 다들 대한민국 선진화를 위해 가는 도중 통과해야 될 험한 자갈길 정도로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남과 북의 긴장도 필요이상으로 고조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한반도 해역에서 다국적군들이 연합하여 펼치는 작전들이 누구를 타깃으로 한 것인지 명백합니다. 전방부대에서 불을 뿜는 대규모의 포격훈련을 참관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글라스 낀 모습에서 남북의 대치현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금강산관광 재개나 핵실험 포기, 6자회담 조속 복귀나 조건 없는 남북정상회담 같은 메아리 없는 짝사랑과 진부한 공방 대신, 권력이양 중인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에 의해 역사적인 대반전이 연출될 수 있다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만약 G20 서울 정상회의 24시간만이라도 서울을 정조준하고 있던 북측의 모든 포신 방향을 북으로 돌려놓는다면, 그보다 더한 도발중지의 메시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건 비무장지대 너머 전 인민군들이 남쪽을 향해서 ‘받들어 총!’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장엄한 장면이 될 것입니다.

개혁의 물결이 유럽대륙에 도미노처럼 자유를 전파했듯이, 1994년에 김일성이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받아들였듯이, 영화광인 김정일 부자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축사를 보내고 영화 같은 해피엔딩을 실행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북 장사포들, 일제히 포신을 돌리다’란 헤드라인뉴스를 언젠가 반드시 보게 되리라고 생각해보는 10월입니다. 금값과 유가와 배추 값처럼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도 제값을 받는 그런 공정한 사회를 누가 거부하겠습니까.



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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