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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칼럼] 월드컵이 청와대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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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방영되는 인기 개그프로그램 중 장수 코너에 출연하는 한 개그맨은 매회 스탠딩 개그 후 이렇게 외친다. “내가 이 코너를 살렸다”고…. 하지만 그 코너 출연자 가운데 그 말에 동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6.2 지방선거 참패 후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벌여온 ‘책임폭탄 돌리기’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정권 프리미엄을 업고도 선거에서 크게 패배했다면 선거 민의의 참뜻을 제대로 파악해 정책에 반영하는데 전력을 쏟아 부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도 너나 할 것 없이 ‘네 탓 공방’만 벌여 왔으니 그 노는 꼴을 지켜보는 국민이 '투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만일 선거에서 이겼으면 어땠을까. 안 봐도 뻔하다. 예의 개그맨처럼 “내가 이 정부를 살렸다”며 서로 공(功)을 다투느라 눈이 벌겋게 충혈 돼 그야말로 난리법석에 호들갑 판이었을 게다. 이 자리 저 자리에 자기 사람 심으려고 독 오른 뱀 떼처럼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다가 웬만한 자리라도 하나 나오면 서로 물어뜯기도 불사했을 게 분명하다.

여권의 책임 폭탄 돌리기는 민의를 무시한 과도한 기대와 맞물려 있다. 집권당에 유리한 쪽(?)으로 여론조사를 빵빵 터트려준 우호 언론의 막강 화력지원 덕에 선거 낙승을 장담했다가 말도 안 되는(정부여당의 입장에서 보면) 참패를 했으니…. 그 망연자실·허탈감이 머물 곳은? 이럴 경우 세상 편한 방책이 무조건 남의 탓으로 돌리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정치판이란 게 어차피 나만 살면 되는 게 생리인 걸….

네 탓 공방이 깊어진다는 것은 결국 국면전환의 필요성도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다. 정치가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이라는 것을 잘 아는 청와대가 국면전환의 타이밍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을 리는 없어 보인다.
아마도 그 타이밍중 하나가 바로 나로호 발사였을 것이다. 나로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우주강국의 꿈'이라는 상징성이 민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돌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7일 기립작업의 문제점, 당초 발사일인 9일 소화용액 분출 등 불안한 점이 많았는데도 10일 발사 강행 후 137초 만에 공중폭발, 왜 그리 서둘렀을까.

앞서 정부는 지난 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사건을 회부하면서 북한 제재에 모든 나라가 동참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이런 가운데 감사원의 천안함 조사결과를 보면 우리 군대는 폭탄주에 비틀거리며 본연의 책무를 망각한 영창감 군대일 뿐이다.

결국 월드컵이 청와대를 살린 셈이다. 주말인 12일 우리 월드컵 대표팀의 그리스 완파와 길거리를 가득 메운 기쁨의 환호, 이어지는 선전의 기대감, 그리고 14일 아침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쇄신 생방송 연설…. 나로호도, 유엔 안보리도 만들어주지 못한 국면전환 타이밍을 월드컵이 제공하고 있다고 할까. 사흘 후 아르헨티나까지 이기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이달로스는 건축과 공예의 명장이지만 자신이 만든 미궁(迷宮)인 라비린토스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회용, 국민호도용 단기 처방식 국면 전환책보다 청와대든 정부여당이든 스스로가 만든 미궁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 기업 회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밝힌 “현장 목소리에 귀닫는 지도자는 벌거벗은 임금님일 뿐”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볼만하다.

민심은 단순·명료·진솔하다. 식물의 뿌리가 수분을 찾아 뻗어가는 향수성(向水性)을 보이는 것처럼 민심은 진실쪽으로 수렴하려는 향진성(向眞性)을 지닌다. 민심은 국가지도자를 띄우기도 하지만 침몰시킬 수도 있다. 국민이 없다면 국가도, 지도자도 있을 수 없다. 국민의 목소리를 늘 귀담아 들는 낮은 자세가 곧 구국(求國)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정치지도자는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할 것이다.



아시아경제 최범 편집제작담당 전무 겸 스포츠투데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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