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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 칼럼] 별들을 '리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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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9일 합동참모본부 간부 회식자리. 몇 순배 술잔이 돌 때쯤 당시 합참 작전부장이었던 이모 소장이 물컵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칼날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게 군 개혁이야"라고. 수두룩 한 선배 별넷, 별셋들은 이 소장의 기세에 그저 곤혹스러워 할 뿐이었다.

하극상이 결코 용납되지 않는 군대 조직에서 이 소장의 행동은 당연히 즉결처분감이었고 곧바로 보직해임됐다. 1960년대 말 월남전에 파병돼 탁월한 전투능력으로 용맹을 떨쳤으며 그후 군 요직을 두루거치고 지장ㆍ덕장ㆍ맹장 소리를 한꺼번에 들으며 '미래의 육군 참모총장감'으로 꼽혔던 그는 그렇게 군을 떠났다.
소위 '합참 회식사건'은 군대 핵심 파벌이었던 하나회의 숙정과정에서 불거진 하나회 소속 장군의 불만폭발 자폭성 돌출행동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전두환-노태우를 필두로 군 요직을 장악해왔던 하나회 척결을 군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숨가쁘게 몰아붙여 '열외 1명도 없이' 하나회의 뿌리를 잘라냈다.

그 결과 김영삼 정부의 지지율이 한때 90%를 넘기도 했으니 정권에는 단단히 '효자 정책'이었던 셈이다. 상명하복 위계질서가 생명인 군에서 편가르기 파벌 척결은 군령과 군기확립을 위해 누가해도 꼭 해야할 일이었고 역사도 매우 잘한 일로 평가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어떤 정책이든 순기능이 있으면 역기능도 있는 법. 이유야 어찌됐든 군대 내 최고 엘리트로 평가받던 상당수 장성들이 물러나고 그 뒤를 차상위 장성들이 채우면서 투철한 안보의식과 확고한 군 리더십의 하향 평준화도 함께 진행됐다는 평가가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후 방위출신 대통령 아들이 군인사를 좌지우지하고 그가 임명한 별 무리들이 권력의 '눈치나 보는' 실세그룹을 형성한 역설(逆說)이 바로 이를 입증한다.
군 리더십과 안보의식의 하향 평준화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아예 군의 존재 가치마저 부정당하며 별들은 현안에서 뒷전으로 밀려있기 다반사였다. 북한에 퍼다부은 돈이 주적(主敵, 북한=주적 개념은 2004년 국방백서에서 아예 삭제된다)의 군대를 위해 쓰인다거나, 국군 최고 통수권자가 '군대=썩는 곳' 쯤으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탁월한 리더십과 투철한 안보의식은 오히려 출세에 방해가 될 뿐이었다. 권력에 빌붙어 적당히 좌파적 시각을 보이고 리더십보다는 어영부영 위아래 눈치나 보는 줏대없는 별들의 양산을 어찌할고...

성웅 이순신 장군은 '불패 군대의 리더십'으로 철저한 준비와 뛰어난 전략, 최선을 다해 전투에 임하는 자세 등을 들고 있다. 이는 바로 장수가 왜 최고의 엘리트이어야 하는가를 긴 세월을 넘어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고도화ㆍ지능화ㆍ첨단화하는 현대전에서 치밀한 분석력과 정확한 예측력, 철저한 준비능력, 불굴의 전투수행능력, 더 나아가 부하들을 압도하는 과학적 식견 등을 갖춘 엘리트 장군만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천안함 사고 전후 우리 군 지휘부의 무계획ㆍ무신경ㆍ무능력ㆍ무소신ㆍ무책임 등은 군의 리더십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 46명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군내 엘리트 리더십과 안보의식을 확고히 세울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장군들도 과감히 리콜을 해야만 한다. 도요타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지지 않기 위해 숨기지 말고 리콜을 통해 개선의 여지가 있으면 가르쳐 고치고 그렇지 않으면 버려야 할 것이다. 탁월한 능력자가 군의 리더여야만 하는 것은 바로 안보가 없으면 국가도 없기 때문이다.



최범 편집제작담당 전무이사 c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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