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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私募'의 치명적 매력에 숨은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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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정수 기자] 사모펀드에서 '사모(私募)'라는 단어의 의미는 '사적으로 모은다'는 뜻이다. 자본시장에서는 50인 미만의 사람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해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채권시장에서 사모 채권은 전매가 제한되는 등 투자 시 여러 제약 조건이 따른다. 유동성 제약 등의 문제 때문에 전문 투자자 시장에서는 사모가 좋은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자산을 불리려는 사람들에게 '사모'라는 단어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인식돼 온 것 같다. 사모가 '당신만 특별히', '자격을 갖춘 고객에게만' 등의 의미로 여겨진 탓이다. 전문가들이 개인적으로 사사롭게 내 자산을 불려준다니 혹하지 않을 투자자가 있었을까.

은행과 증권사 PB(프라이빗뱅커)들은 이 단어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좋은 투자 상품이 있는데 우량 고객들에게만 가입 기회를 드린다"고 속삭이는 일이다. 어떤 개인 투자자는 PB의 제안이 솔깃하고 고맙기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홈쇼핑에서 '한정상품', '재고소진', '마감시간 임박' 등의 의도된 얘기들이 잠재 고객들에게 주는 심리적 조급함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마케팅에 불을 지핀 건 금융 당국이다. 사모펀드 최소 투자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낮춰줬다. 규제 완화는 다른 사람의 투자 수익률과 차별화하려는 투자자들의 욕구와 맞물려 단숨에 시장 규모를 100조, 200조, 300조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왔다. 투자자들을 규제가 강한 공모 시장에서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사모 시장으로 유도하면서 당국 스스로 상당수 펀드에 대한 시장 관리자로서의 의무에 면제부를 준 셈이 됐다.


여기에 전직 장관·검찰총장·은행장 등 명망가들이 고문단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펀드의 신뢰감은 더욱 상승 기류를 탔다. 유수의 기업과 그룹 오너, 공기업, 사립대학까지 우후죽순 사모 시장으로 끌어들인 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 유명 고문단은 유명 연예인을 내세운 일종의 PPL 광고와 유사한 효과를 끌어냈다.

톺아보면 투자자들이 혹한 사모의 매력 포인트 모두 투자 리스크 요인이다. 유명 고문단은 투자자들의 이성적인 판단을 희석시키기 위한 유혹 장치다. 규제가 약하다는 건 당국의 세밀한 관리 밖에 있거나 사각지대에 있다는 의미다. 투자 판단에 가장 중요한 투자설명서(IM)를 허위로 작성해도 당국이 내용의 진실성을 검증해 수정을 요구하거나 하지 않는다.


옵티머스 펀드는 규제 사각을 역이용해 공기업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안정적인 상품으로 소개하고 엉뚱한 곳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빼돌렸다. 사기를 친 옵티머스가 아니라도 사모라는 이름을 달고 투자설명서 등을 지나치게 예쁘게 분식하는 일은 허다하다. 예탁결제원 등의 수탁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시장 규율(Market Discipline)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투자를 종용하는 PB의 속삭임은 투자자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적을 위한 치열함 몸부림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회사 PB 중 공기업 매출채권, 무역금융, 파생상품 등의 복잡한 전문가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상품을 판매하는 이가 많지 않다는 증권사 직원의 고백을 곱씹어야 한다.


사모 시장의 시스템적인 리스크 요인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 논의의 초점은 해결 및 예방 방안보다는 정쟁으로 치우치는 분위기다. 사후적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태의 원인을 알았으면 어떻게 뇌관을 제거하고 숨어 있는 폭탄의 폭발력을 약화시킬지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사모펀드 가입 자격을 다시 3억원으로 올리고 투자자 연령을 낮추는 것으로 리스크가 줄어들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산이다. 사모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들이 절실해 보인다. 공모 수준에 준하는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독일 헤리티지, 라임, 알펜루트, 젠투파트너스, 옵티머스에 이어 또 다른 사모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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