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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헤스 법칙'에 숨은 인생의 진리

최종수정 2019.12.04 14:40 기사입력 2019.12.0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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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수능 성적표 받은 갈림길의 수험생

'헤스 법칙'은 총열량 보존법칙…최종 생성물 같으면 어떤 과정에서도 에너지 총량 같아
삶은 수능처럼 점수·등급 없어…인생에는 최종 목적지를 향한 다양한 자신의 삶이 있어

김병민 과학저술가

김병민 과학저술가

한파 속에서 수능은 끝나고 대입 수시 전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일부 지역 광역버스 운송회사의 파업 때문인지 지하철은 수능을 마친 듯한 학생들로 붐볐습니다. 성적이 어떻고 논술과 등급이 어떻고 하며 재잘대는 학생들 얘기와 얼굴에 귀와 눈을 고정하게 되더군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설사 대학에 간다고 해도 이후 그들을 달갑게 반기지 않을 것 같은 현실들, 취업과 결혼, 집값, 심지어 최근 정치권에서 젊은이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준 사건도 그들의 대화 소재였습니다.


논술 때문인지 어린 학생임에도 시사에 해박한 사실에 감탄하며 그네들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지만, 제 개인의 느낌인지는 몰라도 불안과 박탈감에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갑자기 지난 저녁에 올해 최고의 시청률을 올린 드라마에 나온 주인공 대사가 생각나더군요. 주인공도 원래는 행복을 수능 성적표처럼 생각했다고 합니다. 남들이 줄 세워놓은 표를 보며 자신은 지금 어디쯤인지, 어디에 껴야 하는지 보고 있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행복의 기준을 자신이 정하고 남들 보기에 어떻든 자신만 행복하면 된다고 했지요.


주인공의 말을 듣던 상대 배우가 주인공은 나름의 꽃밭을 가졌다며 부러워하더군요. 상대 배우의 극중 직업은 변호사였고 대사에서 짐작컨데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과 성공이 보장된다고 하는 '스카이' 출신이었습니다.

수능 성적표가 연상의 매개가 됐지만, 그 학생들에게 '헤스의 법칙'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지옥 같은 수능을 끝낸 아이들에게는 잔인한 조언입니다. 헤스의 법칙은 화학Ⅱ를 선택한 학생들이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내용이니까요. 다시는 교과서를 펼쳐 볼 것 같지 않은 아이들에게 이 법칙을 말해주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화학은 반응의 학문입니다. 반응으로 물질이 변화하고 합성을 통해 새로운 화합물이 되기도 합니다. 반응에서 열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화학은 열역학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열역학을 잘 몰라도 열역학 제1법칙은 잘 알려진 '에너지 보존 법칙'이죠.


지금이야 이 사실이 상식으로 자리 잡아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지만 1800년대 초반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열을 '칼로릭'이라는 물질의 흐름으로만 생각한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1743~1794)의 이론이 지배하던 시기였고, 열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요.


이 시기에 스위스 태생의 러시아 화학자이자 의사인 제르맹 앙리 헤스(1802~1850)가 1840년 열과 일에 관련한 법칙 하나를 발표합니다. 열역학 제1법칙이 1850년 발표됐으니 그것보다 이른데, 이후에 이 '헤스의 법칙'은 에너지 보존 법칙의 한 형태로 알려져 '총열량 보존 법칙'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법칙을 이산화탄소(CO2)를 예로 들어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이산화탄소는 탄소 원자 1개(C)에 산소 분자 1개(O2)가 결합해서 생성됩니다. 두 원소는 결합하는 것이 더 안정하기 때문이지요. 이 반응에는 394킬로줄(kJ)의 열이 발생합니다. 물론 이 열은 탄소 원자 1개가 아니라 1몰(mol)에 해당하는 에너지입니다. 반응열 중 꽤 높은 열입니다.

스위스 태생의 러시아 화학자 제르맹 앙리 헤스. 그는 1840년 열과 일의 관계를 정리한 '총열량 보존 법칙'을 발표했다.

스위스 태생의 러시아 화학자 제르맹 앙리 헤스. 그는 1840년 열과 일의 관계를 정리한 '총열량 보존 법칙'을 발표했다.


인류는 이 열을 에너지로 이용했고, 지금은 무차별한 에너지 남용으로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증가한 것이지요. 그런데 출발 물질에서 최종 물질로 가는 데는 이 반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경로도 존재합니다. 탄소가 산소와 반응해 일산화탄소(CO)를 만들고 다시 산소와 반응해 이산화탄소로 가는 반응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경로를 통해 같은 최종 도착지에 도달하는 셈이지요. 이때도 열의 출입은 생깁니다. 실제로 각각 111kJ과 283kJ의 반응열이 생깁니다. 두 반응열을 더해보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물질이 반응하며 상태가 바뀌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하지만 최종 생성물이 같다면 어떤 경로를 통하든 에너지의 출입이 다르지만 반응에 관여한 에너지 총량은 같다는 것이 헤스가 발견한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이후 일반화하고 물질과 에너지를 동일한 개념에서 확장해 열역학 법칙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아이들에게 헤스의 법칙을 말해주고 싶었을까요. 이런 과학 법칙은 시험이 아니라도 알아두면 쓸 데가 꼭 있더군요. 삶에 대입해보면 꽤 근사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결국 사람은 인생이란 최종 목적지가 같다는 겁니다. 그 최종 목적지로 가기 위해 각자 다양한 경로를 거쳐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인생이지요.


최근에 사람들에게 무척 예민하게 다가오고 있는 사회현상과 균열이 이념과 정치의 대립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 소위 586세대와 다음 세대의 갈등이 녹아 있습니다. 이미 자식 세대의 시선에는 부모 세대가 분노의 상대이고 사회의 공적이지요. 부동산 중심의 자산구조를 가진 부모 세대에게 월세를 내며 살아가야 하는 청년 세대, 근력과 용기가 부족하다고 모욕적 평가를 받기 이전에, 기회조차 별로 보이지 않는 자식 세대가 느끼는 것은 희망의 부재입니다.


사실 586세대의 시절은 가난의 탈출을 목표로 성장과 효율이 지배했습니다. 유례 없는 고도의 경제성장률에다 은행 이자는 20%에 달했죠. 그만큼 기회가 풍부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이런 경제적 활력이 없어졌고, 이런 변화가 또 부모 세대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어렵기에, 그들 자신도 감내하고 견뎌온 게 사실이지요. 그런데 이런 시기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줬고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정의로운 공정 분배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성장과 효율 기반에서 풍족한 기회에 노출됐고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데 매몰된 세대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여전히 통할 거라 믿고 아이들 세대가 가야 할 길을 만들어 준 겁니다. 모두가 대학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지요.


그리고 세계에서도 유례 없는 '하늘 대학'을 만들었습니다. 땅에서 고생해 하늘로 올라야만 이 사회에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고 미래가 보장될 거라는 착각에 빠졌고, 자신의 기득권을 대를 이어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죠. 소위 학벌사회가 됐고 교육 시스템은 결국 기형적으로 복잡해졌습니다. 게다가 목적을 위해서라면 부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의 삶에 개입한 겁니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공개일인 4일 서울 여의도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성적을 확인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공개일인 4일 서울 여의도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성적을 확인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그런데 이런 말이 그들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세상은 점점 좋아지리라는 겁니다. 민주주의가 생경했던 시절, 모든 것이 지금보다 공정하지 못했죠. 지금은 분명 그때보다 좋아졌지요. 공교롭게 저는 열차에 타고 이 아이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겨울로 들어가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으니 영화 '설국열차'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설국열차에서 앞칸으로 가기 위해 가열하게 투쟁하던 사람들과 소위 좋은 자리를 지키려 강력하게 버티던 사람들, 하지만 둘 다 오로지 한 길로만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성세대도 수능 성적표처럼 앞칸에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늘 허기지고 빼앗길까 동동거리는 삶을 살아야 했지요. 자신만의 꽃밭이 없었습니다. 가진 것이 바로 행복으로 대입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사회적 자원의 공정한 분배 논리라면 기성세대는 앞칸을 그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맞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모두 설국열차를 탈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겁니다. 분명 사회는 다음 세대에 더 좋아질 겁니다. 다만 지금과 같이 모두가 한 곳을 향하는 경로로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장점이라 여겼던 부분마저 모두 불공정한 배분이 됐고 미래사회의 경쟁력마저 떨어졌지요.


목적지로 향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열차에서 내려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도 되고 느리겠지만 걸어가도 됩니다. 어쩌면 돌아가는 낯선 길이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걸 말해주고 싶습니다. 드라마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처럼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입니다. 그 다양한 삶의 과정에서 사용되거나 내뿜는 에너지는 모두 다르지만, 삶의 풍경도 내음도 더 가까이 느끼게 되고 더 설레며 자신만의 꽃밭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오히려 미래가 요구하는 사회 구성원은 그 다양성에서 나올 겁니다. 이미 선진국에서 시도하는 인재 채용에 대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헤스의 법칙을 적용해보면 결국 모든 사람의 삶의 종착지는 같으니 어떤 과정이든 에너지 총량은 같지 않을까요. 누구나 타려고 하는 그 열차만이 정답은 아닐 겁니다.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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