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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의 그림으로 읽는 서양예술사] 숨은 그림 찾기: 이카로스의 추락

최종수정 2019.08.14 15:16 기사입력 2019.08.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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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질하는 농부·고기잡는 어부의 무관심…허우적거리는 다리·흩어진 깃털로 짐작 가능
인간의 어릭석음·교만 그림에 곳곳에 교훈…'자유에 대한 인간의 열망' 또 다른 해석도

이미혜 예술사저술가·경성대 외래교수

이미혜 예술사저술가·경성대 외래교수

1912년 벨기에 왕립미술관은 런던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낡은 그림을 발견했다. 제작연도도, 서명도 없고 언급된 문헌도 찾을 수 없었다. 여러 번 덧칠이 되어 보존 상태도 나빴다. 하지만 미술사학자들은 이것이 벨기에가 낳은 위대한 화가 대 브뢰헬의 작품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의 추락을 다루고 있다. 1세기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에는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 얘기가 나온다. 다이달로스는 건축가이자 발명가, 예술가였다. 그는 재주가 많은 만큼 질투심도 많았다. 조카이자 제자인 페르딕스가 뛰어난 발명을 하자 그를 성벽에서 밀어 죽여버렸다. 아테네에서 추방된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섬의 미노스 왕에게 봉사했다. 왕이 전쟁에 나간 사이 왕비는 황소와 정사를 벌여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복잡한 미로가 얽힌 궁전을 만들게 하고 수치의 증거인 괴물을 그곳에 숨겼다.


영웅 테세우스가 이 괴물을 무찌르러 오자 다이달로스는 미궁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비밀을 누설한 데 분개한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 부자를 미궁에 가두었다. 다이달로스는 밀랍과 깃털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올라 도망쳤다. 떠나기 전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너무 높거나 너무 낮게 날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카로스는 나는 데 적응이 되자 신이 났다. 아버지의 주의를 잊어버리고 점점 높이 날아올랐다. 태양에 다가가자 밀랍이 녹아내리고 깃털이 흩어졌다. 날개가 망가진 이카로스는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주를 저주하며 아들의 시신을 수습해 땅에 묻었다.


이 그림은 풍경화와 풍속화의 중간쯤 된다. 풍경화에서는 자연 묘사가 우선이므로 인물은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해도 미미한 존재로 표현된다. 반면 풍속화에서는 인물의 행동이 중요하고 장소는 무대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림을 보면 우선 광활한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풍경화 같다. 전경으로 눈을 돌리면 쟁기질하는 농부가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언덕 기슭에는 양 떼와 목동이 있고, 오른쪽 물가에는 고기 잡는 어부가 있다. 어촌의 생활을 그린 풍속화 같다.

이카로스는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오른쪽 범선 아래 허우적거리는 두 다리가 있다. 깃털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런데 농부와 어부는 사람이 물에 빠진 걸 알아채지 못한 건지 모르는 척하는지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양치기는 오히려 반대편 하늘을 바라본다. 화면에는 안 보이지만 그쪽에는 다이달로스가 날면서 아들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 등장인물들은 화가 마음대로 그려 넣은 게 아니고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나오는 얘기를 따랐다. "물에다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선 목동, 쟁기를 잡고 선 농부가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이 다이달로스 부자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들은 하늘을 날 수 있는 이 다이달로스 부자를 신들로 여겼을 터였다." 하지만 오비디우스의 인물들과 달리 이 그림의 인물들은 다이달로스 부자에게 흥미가 없다. 짐승들도 밭을 갈고, 풀을 뜯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브뢰헬은 풍속화나 종교화의 형식을 빌려 도덕적 교훈을 전달했다. 브뢰헬이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림이란 반드시 어떤 이야기를 포함해야 하며, 그 이야기는 도덕적으로 결론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그림은 사방 교훈을 포함하고 있다. 하늘에서 사람이 뚝 떨어졌어도 일을 계속하는 농부와 어부는 "사람이 죽어도 쟁기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플랑드르 속담을 암시한다. 화면 왼쪽 귀퉁이에 있는 밀가루 부대와 칼이 꽂힌 돈주머니도 교훈을 품고 있다. 밀가루 부대는 "바위 위에 뿌린 씨는 자라지 못한다"라는 속담을, 칼이 꽂힌 돈주머니는 "칼과 돈은 현명한 손을 원한다"라는 속담을 뜻한다. 이 속담들은 이카로스의 추락이 상징하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자만을 경계한다.


예술사회학자 프랑카스텔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이 그림에서 정치적 의미를 읽었다. 브뢰헬이 살던 시대는 혼란했다. 당시 그가 살던 플랑드르는 스페인의 지배 아래 있었다. 가톨릭 종주국이었던 스페인과 달리 독일과 가깝고 상인 계층이 많았던 플랑드르는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신교에 쏠렸다. 1567년 펠리페 2세는 신교도들을 누르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 브뤼셀에 상륙한 스페인 군대는 신교도들을 마구 학살했다. 마흔 살의 브뢰헬도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가 어느 쪽을 지지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종교의 자유가 금지된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소신을 밝히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카로스의 추락', 1560년경(73.5x112㎝, 벨기에 왕립 미술관, 벨기에 브뤼셀)

'이카로스의 추락', 1560년경(73.5x112㎝, 벨기에 왕립 미술관, 벨기에 브뤼셀)


프랑카스텔은 이 그림을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해석했다. '변신'에서 미노스 왕에게 감금당한 다이달로스는 외친다. "바다를 막고 항구를 봉쇄하여 나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늘로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나는 저 하늘로 가리라! 미노스가 모든 것을 다스려도 하늘의 주인은 아니지 않는가!" 프랑카스텔이 해석한 대로 굴종을 강요당하고 신앙의 위기를 겪던 플랑드르 시민 브뢰헬은 다이달로스에게 감정을 이입했을지도 모른다.


화면은 시원스레 사선으로 분할된다. 왼쪽 언덕배기에서는 농부가 쟁기질을 한다. 오른쪽에는 바다가 펼쳐진다. 수평선에는 태양이 반나마 가라앉고 있다. 바다는 넘어가는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고 수평선 부근의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다. 뾰족한 바위산과 멀리 보이는 항구의 모습은 나폴리와 느낌이 유사하다. 브뢰헬은 젊은 시절 여행했던 나폴리의 모습을 잘 기억했다 이 그림에 써먹었다. 플랑드르적인 요소도 있다. 오비디우스는 배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브뢰헬은 멋진 배를 두 척이나 공들여 그려 넣었다. 꼼꼼하게 그린 범선은 플랑드르 조선업의 수준을 보여준다. 이 배의 선원들 역시 일에 열중하느라 지척에서 일어난 사고에는 무신경하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카로스의 추락을 주시하는 존재가 있다. 고기 잡는 어부 등 뒤에 나뭇가지가 드리워져 있고 자고새가 물을 향해 앉아 있다. 아테네 여신은 다이달로스가 성벽에서 밀어버린 조카 페르딕스를 한 마리 새로 변하게 했다. 사람들은 그 새를 페르딕스라 불렀다. 다이달로스가 아들의 주검을 땅에 묻고 있을 때 자고새가 밭 가에 내려앉아 재미있어했다. 이로써 이 비극적 이야기의 사이클이 완결된다. 브뢰헬은 이 많은 이야기를 단 하나의 장면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글을 마무리해도 좋겠지만 반전이 있다. 1996년 이후 학자들은 이 그림이 진짜 브뢰헬의 것인지 꾸준히 의문을 제기했다. 첫째 이 작품이 브뢰헬의 다른 작품에 비해 질이 떨어지며, 둘째 브뢰헬은 패널에 유채를 사용했는데 이 그림은 캔버스에 유채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 문제는 무분별한 덧칠 탓일 수 있지만 두 번째 문제는 확실한 검증이 필요했다. 캔버스에 유채 방식은 패널에 유채보다 후대에 나타난 기술이다. 만일 제작 시기가 후대로 판명되고, 브뢰헬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린 것으로 밝혀진다면 이 작품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은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문학, 미술을 막론하고 원전 비평은 일차적 중요성을 지닌다. 원전 확립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연구나 비평은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


이 그림이 발견된 20세기 초에는 위작이나 모작을 알아낼 과학적 수단이 없었다. 명망 있는 미술전문가의 한마디가 철석같은 진리로 둔갑했다. 하지만 20세기 말은 상황이 달랐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이라든지, 물감 일부를 떼어내 화학적 분석을 하는 방법이 등장해 있었다. 2011년 브뤼셀 왕립문화유산연구소는 이 그림이 1600년경에 제작된 것이라고 발표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브뢰헬은 1569년에 사망했으므로 적어도 그가 직접 그렸을 가능성은 사라진 것이다. 그러면 기존의 작품 해석은 어찌 되는 것일까? 왕립문화유산연구소는 이 작품이 브뢰헬의 원작을 모방해 그린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에는 원작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다면 해석이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이 그림의 원작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 브뢰헬은 이 그림의 원작(만일 그것이 진짜 있었다면) 외에는 그리스 신화를 다룬 적이 없다. 너무 알려고 하면 다치는 수가 있다.


이미혜 예술사저술가·경성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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