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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술은 닭이 물 마시듯 조금씩만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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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주 도수의 비밀 '지나침을 싫어한 자연, 14도까지만 허락했다'
과학자 파스퇴르, 佛 양조산업에 기여…獨 부흐너 '발효효소' 추출
발효과정 자연이자 과학이라면…증류주는 인간만이 마실 수 있어

김병민 과학저술가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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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방문한 외국인과 술자리를 하는 경우가 저는 종종 있고 그때마다 소개하는 우리 술이 있습니다. 바로 막걸리입니다. 그들에게 생소한 이름의 막걸리는 '쌀로 만든 와인(Rice wine)'이라는 설명으로 친근하게 다가갑니다. 막걸리와 포도주는 발효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술이기 때문이죠.


어느 날 발효주에 관해 관심 있던 외국 친구가 두 술은 비슷한 제조방식인데 막걸리 알코올 도수가 6~7도 정도로 낮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원래 막걸리도 포도주 도수와 비슷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포도주처럼 과당이 아니라 쌀을 재료로 한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누룩을 사용하고 전분으로 걸쭉해집니다. 술의 물성을 높여 마시기 좋게 하려고 물을 타서 알코올 함유가 낮아진 거죠. 높은 도수인 증류술과 발효주의 도수는 대략 12~14도가 한계점입니다. 발효는 자연이 만든 화학반응 과정입니다. 과정이 과학이니 그 한계도 분명 과학적인 이유가 있을 겁니다.

술에 관한 발효의 역사는 인류의 기록이 남아있는 시간까지 깊숙이 들어갑니다. 기원전 수많은 자료와 고대 신화에서 발효의 기록이 있습니다. 발효 과정은 당연히 수많은 과학자의 관심 대상이었겠지요. 발효라는 용어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과학자가 저온살균법을 개발한 루이 파스퇴르입니다. 그의 업적은 발효가 물질의 화학적 변화 이전에 생물에 의한 개시를 보여준 전환점이었지만 발효 과정의 기본적인 흐름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파스퇴르를 떠올리면 우유나 발효한 요구르트가 생각나지만 사실 그의 연구는 당시 프랑스 양조산업에 기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발효와 술은 뗄레야 뗄 수가 없지요. 발효에 기여하는 미생물을 효모(酵母)라고 하는데 한자에서 보듯 밑술을 뜻합니다. 효모를 뜻하는 영어 '이스트(yeast)'도 '끓는다'는 의미가 있지요. 발효로 술을 만들 때 올라오는 거품이 마치 끓는 모습과 비슷해 붙여진 겁니다. 과학자들은 효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특정 효소의 정체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효소만 찾아낼 수 있다면 당시에 발효에 생명력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생기론을 종식할 수 있었으니까요.


결국 1897년 독일의 화학자 에두아르트 부흐너는 효모에서 발효효소를 추출합니다. 그는 설탕을 가지고 추출한 발효효소만으로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생성했지요. 결국 발효는 살아있는 효모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효모가 가진 특정 단백질 촉매인 효소에 의해 유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1907년 노벨화학상을 받지요. 발효의 흐름이 밝혀졌고 생화학(Biochemistry)이란 분야의 시작이 부흐너의 발효 과정 연구로 출발했다고 간주할 정도로 발효는 생물체의 동작을 물질의 화학반응과 같은 방법으로 연구하는 분야로 확대됐지요. 모든 발효물에 효소(酵素ㆍEnzyme)를 적용한 것도 이때부터이고 엔자임은 '효모의 안'이라는 의미로 효모에 있는 요소로 정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신윤복 '주사거배(술집에서 술을 들다·왼쪽)'와 이집트 벽화

신윤복 '주사거배(술집에서 술을 들다·왼쪽)'와 이집트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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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발효주 과정을 훔쳐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포도주처럼 과일을 이용하지 않는 막걸리나 약주를 만드는 경우 쌀과 같은 전분을 사용합니다. 쌀을 익히고 누룩을 섞습니다. 바로 누룩이 효모인 셈이지요. 고분자인 전분을 효모가 이용할 수 있는 저분자인 단당류나 이당류로 분해해야 합니다. 누룩 속 곰팡이는 알파 아밀라아제 효소로 전분을 잘게 잘라 포도당을 만듭니다. 포도주 경우에는 바로 단당류인 과당을 사용할 수 있어 이 과정을 건너뛸 수 있지요. 증류주도 이 과정을 피하지 못합니다. 코냑은 포도주를 증류한 것이고 위스키는 보리를 발효 후 증류한 겁니다.

결국 발효의 출발은 당(糖)인 셈이죠. 이제 미생물인 효모가 등장하고 효모는 특정 분자를 포도당에 붙여 다른 물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은 당을 분해한다고 해서 해당(解糖)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일련의 화학반응을 거쳐 당은 결국 '피루브산'이 됩니다. 막걸리와 달리 포도주를 만들 때는 효모를 따로 넣지 않지만, 껍질째 으깨 넣는 이유는 술의 색깔 때문만이 아니라 껍질에 효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발효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해당이라는 과정 중에 떨어져 나간 수소 양성자가 여기에 다시 사용됩니다. 자연은 버리는 게 없습니다. 알뜰하게 모든 자원을 동원해 생명력을 이어가죠. 효모는 피루브산 분자를 이산화탄소와 아세트알데하이드(C2H4O)로 분해하고 여기에 수소양성자(H+) 두 개를 붙여 에탄올(C2H5OH)을 만듭니다.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으로 날아가고 결국 술이 남는 겁니다. 막힌 병 안에서 발효가 일어나면 이산화탄소가 술에 녹아 들어가고 병을 열면 압력이 낮아져 뻥 하고 튀어나오죠. 이게 바로 샴페인이고 막걸리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루이 파스퇴르

루이 파스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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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모는 빵을 만들 때도 사용됩니다. 빵을 구울때 부풀어 오르는 건 발효에 의해 생성된 이산화탄소 때문이고 알코올은 열에 의해 날아가 버립니다. 이제 발효주의 알코올 농도가 12~14도에서 멈추는 이유를 확인해 봅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는 상처를 알코올로 소독을 합니다. 알코올은 미생물을 죽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바로 이 지점의 농도에서 거꾸로 효모가 죽기 때문이고 발효가 멈춥니다.


하지만 여기가 발효의 끝은 아닙니다. 발효는 알코올을 아세트산으로 만들지요. 바로 초산(醋酸)입니다. 두 한자에 술독을 뜻하는 '유(酉)'가 있고 식초를 의미하는 초에 있는 '석(昔)'자에는 '날(日)'이 지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치 문자가 화학 반응식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향기가 좋다는 이탈리아어 '발사믹(balsamic)'은 모데나 지방 포도 품종 포도주를 목질이 다른 여러 나무통을 옮겨 가며 시간을 더해 만든 식초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렇게 발효는 술과 시간을 포함하고 있지요. 우리 몸에서도 같은 화학반응이 일어납니다. 술을 마신 몸은 알코올을 산화시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거쳐 초산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물로 산화시키죠. 식물이 물과 이산화탄소와 빛으로 포도당과 탄수화물을 만들어 내고 자연은 발효를 통해 여러 물질로 변화시킵니다. 인간은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고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며 다시 원래 물질로 자연에 돌려놓는 거대한 화학순환에 참여합니다. 이쯤되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화학이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에두아르트 부흐너

에두아르트 부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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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발효는 과학이고 자연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입니다. 그에 비해 증류 방식은 다릅니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지요. 증류주는 원래 몽골이 기원입니다. 몽골이 아랍을 지배하며 끓는점이 낮은 금속인 아연을 제련하는 데에 사용한 증류 방식에서 힌트를 얻은 겁니다. 그들이 마신 마유주라는 낮은 도수의 발효주는 쉽게 변질됐기 때문에 높은 도수의 술을 얻기 위해 증류방식을 응용해 보관 기간을 늘린 겁니다. 이후 증류 방식은 몽골의 지배지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죠.


우리나라 안동소주도 고려와 몽골이 연합하던 시기에 안동에 전해진 것이고 코냑과 위스키도 몽골에게서 배운 결과물입니다. 물론 도수를 높이는 방법은 증류외에도 술을 동결시켜 알코올만 얻는 방법도 있고 밑술을 더하거나 높은 도수에도 견디는 효모를 적용하는 방법등 여러가지가 있지요. 자연의 순환에 인간이 개입하며 도수가 높아지며 다양하고 고급화된 술은 인간의 욕망이란 본성과 맞물리며 부의 과시와 쾌락과 탐닉에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버닝썬 클럽 사건이나 각종 접대사건에도 술은 매개로 등장했지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술 권하는 사회 현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삶과 사회적 활동에 술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인류에게 고통의 망각으로 버텨낼 만큼 필요하고 음식의 하나로 삶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습니다.


발효주가 매력적인 이유는 자연의 순환에 온전하게 참여하는 일원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이 자연의 순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그 한계인 14도를 거대한 자연이 결정한 거지요. 포도주에 신의 물방울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도 자연의 위대함을 빗댄 말일 겁니다. 문제는 늘 지나침이지요. 과음과 그에 따른 중독은 각종 사고와 범죄, 그리고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한자인 '술 주(酒)'는 '물 수(水)'변에 '닭 유(酉)'가 들어 있습니다. 닭이 물을 마시듯 조금씩 즐기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속설이죠. '유(酉)'가 십이지 가운데 닭을 뜻하기 때문이고 닭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 문자는 고대문자인 갑골문과 금문에서 밀봉한 술독의 형상으로 표현됩니다. 술독을 보관할 때는 변질되지 않도록 밀봉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지금의 문자로 발전했지요. 문자에도 과학이 있었습니다. 술 권하는 사회 현상이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지금은 틀린 속설을 따라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연이 준 선물로 닭이 물을 마시듯 즐기며 작은 위안을 받고 가는 정도라면 술을 권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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