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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의 그림으로 읽는 서양예술사] 나폴레옹의 예술품 약탈

최종수정 2019.01.23 09:37 기사입력 2019.01.2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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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베로네세, '가나의 혼인잔치', 1563년
(660 x 990 cm, 루브르 미술관, 프랑스 파리)

파올로 베로네세, '가나의 혼인잔치', 1563년 (660 x 990 cm, 루브르 미술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을 하루에 돌아보기란 불가능하다. 방문객들은 일부 관심 있는 전시실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래도 루브르에 간 이상 누구나 들리는 곳이 한 군데 있다. 드농 관 2층 711호, 일명 ‘모나리자 방’이다. '모나리자' 맞은편 벽에는 '가나의 혼인잔치'가 걸려 있다. 루브르 소장품 가운데 가장 큰 그림이다. 이 두 그림 사이로 연중 수백만 명이 지나간다. 대개 모나리자를 보러온 사람들이다. 관람객들이 16세기 초 이탈리아 여인의 신비한 미소에 넋을 잃고 있는 덕택에 가나의 혼인잔치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구경할 수 있다.

그림의 내용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을 다루고 있다. 예수가 어머니,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지방 가나에서 열린 혼인잔치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잔치 도중 포도주가 떨어졌다. 성모가 이를 눈치 채고 아들에게 귀띔했다. 예수는 나서기를 주저하지만 어머니가 은근 부추기자 하인들에게 돌항아리를 물로 채우라고 명했다. 하인들이 시킨 대로 하자 이번에는 그것을 퍼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갖다 주라고 했다. 돌항아리의 물은 어느 새 포도주로 바뀌어 있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은 예수가 최초로 행한 기적으로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십자가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을 내딛는 의미가 있다.

베로네세는 이 일화를 16세기 베네치아의 사치스런 연회 속에 녹여 넣었다. 화면은 크게 보아 상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아래 부분에는 잔치가 펼쳐진다. 위 부분에는 배경이 되는 그레코로만 식 건물과 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이 보인다. 기둥으로 둘러쳐진 마당에는 테이블이 디귿 자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테이블에는 지위가 높은 손님들이 사치스런 옷을 입고 앉아 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 오토만 제국의 슐라이만 대제를 비롯해 당대 베네치아 상류층 인사들이다. 왼쪽 맨 끝에 있는 한 쌍의 남녀가 신랑신부로 생각된다.

'가나의 혼인잔치'(세부: 악사들이 있는 부분)

'가나의 혼인잔치'(세부: 악사들이 있는 부분)

하지만 이 지위가 높은 손님들은 예수와 성모, 예수의 제자들에게 가운데 테이블을 내주고 양편 테이블로 물러나 있다. 손님들이 옆 사람과 얘기를 주고받고, 하인에게 뭔가 지시를 하는 등 번잡한 데 반해 수수한 옷을 입은 예수와 성모는 고요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예수의 앞쪽 공간에는 악사들이 음을 조율하고 있다. 베로네세는 악사들에게 자신을 포함해 당대 유명 화가들의 모습을 부여했다. 왼쪽에 흰 튜닉을 입은 악사가 베로네세 자신이다. 플루트 연주자는 야코포 바사노, 그 옆은 틴토레토, 콘트라베이스 비슷한 큼지막한 악기를 안고 있는 사람은 티치아노다. 악사들의 존재는 연회를 화려하게 해주고, 이 장면에 연극 무대 같은 분위기를 더해준다.
연회는 포도주와 함께 제공되는 디저트 코스에 이르러 있다. 오른편의 우아한 여인은 주요리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이쑤시개를 사용하고 있다. 상 위에는 과일과 견과, 당과 따위가 담긴 접시가 놓여 있다. 화면 왼편은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을 보여준다. 흑인 시종이 신랑에게 포도주 잔을 내밀고 있다. 그 앞에 뒷모습이 보이는 하인이 항아리를 뒤집어 들고 주인을 쳐다본다. 술이 떨어진 것이다. 잔을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 신랑의 얼굴이 자못 근심스럽다. 손님들이 포도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오른편을 보라! 노란 옷을 입은 하인이 항아리를 들어 식탁용 물병에 포도주를 따르고 있다. 항아리에서 붉은 액체가 콸콸 쏟아진다. 그 뒤에는 포도주 담당 시종이 잔을 눈앞에 치켜들고 진짜 포도주가 맞나 살펴보고 있다.

베로네세는 1562년 베네치아의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불려갔다. 최근에 건물을 새로 지은 이 성당은 베로네세에게 식당을 장식할 그림을 주문했다. 이 정도 대형 그림을 주문한 것은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부유함과 세력을 보여준다. 이 그림이 걸릴 식당은 말이 성당 식당이지 외부 유력 인사들이 자주 방문해 연회를 벌이는 공간이었다. 이 성당은 순례나 구경을 위해 방문하는 사람도 많았으므로 눈을 끄는 화려한 그림이 필요했을 것이다. 성당 측은 베로네세에게 후한 조건을 제시했다. 그림이 완성되면 324 두카트를 지불하기로 약정했고, 그림 그릴 동안 필요한 생활비와 주거비, 별도로 포도주와 식사도 제공하기로 했다. 베로네세는 1563년 9월 그림을 인도했다.

1797년 프랑스 군이 쳐들어올 때까지 이 그림은 234년 동안 성당 식당에 걸려 있었다. 나폴레옹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 군은 1796년 북부 이탈리아를 침공해 오스트리아가 주축을 이룬 대프랑스 동맹군을 격파했다. 1797년 2월 교황은 항복 문서와 다름없는 톨렌티노 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에 따라 교황령이었던 아비뇽이 프랑스에 양도되었고, 교황령 국가들은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했다. 이에 더해 바티칸에 있던 회화와 조각 백여 점, 고문서 등을 파리로 실어 보내야 했다.

프랑스 군은 계속해서 유일하게 버티고 있던 베네치아 공화국으로 진격했다. 천 년의 영화를 자랑하던 베네치아도 스물여덟 살의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 군 앞에 무력했다. 8월에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캄포포르미오 조약을 맺고 베네치아를 오스트리아에 넘겼다. 1798년 1월 오스트리아군이 당도하기 전 나폴레옹은 베네치아를 약탈했다. 공공 재산이든 사유 재산이든 가리지 않고 예술품을 몰수했다. 산마르코 성당의 네 마리 청동 말과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잔치도 그중에 포함되었다. 프랑스 군은 0.5톤이 나가는 거대한 캔버스를 가로로 자른 뒤 카펫처럼 둘둘 말아 파리로 보냈다. '가나의 혼인잔치', '라오콘' 등 이탈리아 원정에서 약탈한 예술품들은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되었고, 파리에서는 ‘자유와 예술’이란 이름으로 대대적인 축제가 벌어졌다.

샤를 르브렁, '시몬 집에서의 식사', 1653년
(385 x 316 cm, 아카데미아 미술관, 이탈리아 베네치아)

샤를 르브렁, '시몬 집에서의 식사', 1653년 (385 x 316 cm, 아카데미아 미술관, 이탈리아 베네치아)

나폴레옹은 숨 돌릴 새도 없이 시리아와 이집트를 침공했다. 영국의 숨통을 조이기 위한 이 작전을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으나 군대를 따라갔던 과학자, 고고학자들은 자료를 수집하고 수많은 유물을 약탈했다. 1799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나폴레옹은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더 이상 거칠 게 없었다. 1802년 루브르 미술관을 나폴레옹 미술관으로 변경하고 초대 관장으로 이집트 원정에 동행했던 고고학자 비방 드농 남작을 임명했다. 나폴레옹은 전쟁의 천재였는지는 몰라도 예술에 대한 식견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예술품이란 자신의 권력과 프랑스의 영광을 과시하는 데 유용한 물건일 뿐이었다.

드농은 나폴레옹의 뜻을 받들어 소장품을 정리, 전시했으며 프랑스 군이 약탈할 유물 목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나폴레옹 미술관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과거 프랑스 왕실과 귀족, 교회로부터 몰수한 예술품, 나폴레옹 군이 유럽 전역에서 약탈한 걸작들, 근동 지역에서 수집 또는 약탈한 유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미술관은 곧 세계 최고의 예술품들을 소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갑작스런 번성은 오래 가지 않았다. 1814년 나폴레옹은 권좌에서 쫓겨났다. 유럽 각국 대표들이 모여 합의한 비엔나 조약에 의해 약탈 예술품의 송환과 배상이 시작되었다. 프랑스는 라오콘, 산마르코 성당의 네 마리 말 등을 되돌려주었지만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되돌려주지 않은 것도 상당수였다.

교황 비오 7세는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를 프랑스에 파견해 교황령에서 약탈해간 예술품을 회수하는 일을 맡겼다. 베로네세의 그림은 종교 단체의 소유였으므로 카노바가 이 그림의 회수도 맡았다. 드농은 베로네세의 그림이 너무 약해서 운반 도중 훼손될 수 있다는 핑계를 댔고 카노바는 이 작품을 회수 목록에서 제외했다. 드농은 그 대신 17세기 프랑스 화가 샤를 르브렁의 '시몬 집에서의 식사'를 보내기로 하고 협상을 마무리했다. 도대체 르브렁이 베로네세 근처에나 갈 수 있단 말인가?

드농은 치사한 짓을 했지만 프랑스 입장에서는 드농 덕분에 이 엄청난 보물을 영구히 소유하게 되었다. 프랑스 인들이 루브르 미술관의 한쪽 날개에 드농의 이름을 붙인 것은 이해할 만하나 한편으로는 씁쓰름하다. 2007년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복원을 위해 노력해온 베네치아의 조르조 치니 재단은 루브르 미술관의 협조를 얻어 컴퓨터로 디지털 복사한 똑같은 크기의 그림을 원래 자리에 걸었다. 원본이 아니라 아쉽지만 화가가 의도한 시점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미혜 예술사저술가·경성대 외래교수

이미혜 예술사저술가·경성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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