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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평창 대관령 음악제의 미래

최종수정 2018.09.19 06:19 기사입력 2018.08.0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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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스펜' 꿈꾸는 손열음 감독, 고음악 살려낸 인스브루크는 어때요

한정호 객원기자

한정호 객원기자

역대 동계올림픽은 대도시와 시골 마을에서 골고루 열렸다. 삿포로(1972년ㆍ인구 200만명), 오슬로(1952년ㆍ60만명), 밴쿠버(2010년ㆍ55만명)가 대회를 열었고 베이징(2100만명)은 하계(2008년)에 이어 동계올림픽(2022년)도 주최한다. 한편 미국 스쿼밸리(1960년ㆍ800명), 프랑스 샤모니(1924년ㆍ9000명), 노르웨이 릴레함메르(1994년ㆍ2만7000명), 평창(2018년ㆍ4만3000명) 같은 작은 마을은 올림픽 시설의 사후 이용에 애를 먹는다. 스키점프대의 착지 지점을 프로축구 경기장으로 쓰던 알펜시아도 향후 활용이 여의치 않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1964ㆍ1976년)와 평창은 눈이 없는 여름, 클래식 페스티벌로 활력을 찾고자 한다. 인스브루크에선 1976년부터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Innsbrucker Festwochen der Alten Musik)가 열리고, 대관령에선 2004년부터 평창 대관령 음악제가 7월 마지막 주를 즈음해 2주 동안 열린다. 오슬로, 삿포로, 토리노(2006년) 역시 특색 있는 여름 음악 축제를 운영한다.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은 동계올림픽이 열린 산악으로 가면 자연과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동계 오륜 개최 도시의 단체장은 겨울엔 스키 관광객을, 한여름엔 음악가와 콘서트고어(concertgoer)를 맞아들인다.

평창 대관령 음악제의 초기 모델은 미국 아스펜 음악제다. 컨트리 보컬 존 덴버의 '로키 마운튼 하이'의 배경이 인구 6000명의 콜로라도주 산정이다. 19세기 후반 마을에서 은광이 발견된 이후 아스펜은 번성했다. 은행과 병원이 들어섰고 2개의 오페라하우스까지 세워질 정도였다. 그러나 1893년 시작된 금본위제(金本位制)로 시세가 저물었고, 1930년에 인구는 700명으로 줄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스키 리조트 건설로 아스펜을 재생하는 방안이 부상했고 1949년 아스펜 음악제도 시작됐다.

초대 축제부터 아티스트가 쟁쟁했다. 의사 겸 오르간 주자였던 알베르트 슈바이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대가 나탄 밀스타인이 등장했다. 폐광이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클래식과 함께 골프와 레저를 즐기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강변에서 카지노를 즐기는 그저 그런 휴양지가 아니라 뮤직 텐트에서 양질의 클래식을 함께할 수 있으니 슈퍼 리치와 연예인들이 아스펜에 별장을 구매했다. 가로에 유명 브랜드의 부티크와 레스토랑이 출점했고, 도시의 미관과 정체성은 음악으로 완전히 변했다.

아스펜 음악제에 여러 번 참가한 강효 줄리어드음대 교수는 국내 지방자치단체에 아스펜을 모델로 한 축제를 제안했고, 강원도는 동계올림픽 유치를 명분으로 강 교수와 손을 잡았다. 음악제와 음악학교를 함께 하는 아스펜의 운영 시스템이 평창에 처음부터 자리 잡은 이유다. 마스터 클래스와 강의, 오케스트라 공연과 실내악 무대가 8주 동안 이어지면서 자체 육성한 학생들이 악단 공연을 하기까지, 미국 경향 각지에서 모인 음악도들의 가족들도 아스펜에서 돈을 쓴다. 요즘에는 페스티벌 기간에 대략 7만명의 관객이 아스펜을 다녀간다.
아스펜은 중국 부호들이 부자 동네에 몰려들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고급 휴양 문화 도시의 이미지가 점점 중국인 잔치 마당으로 흐르는 점을 우려한다.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을 펀드 모금의 기회로 삼아 특별 공연을 준비하는 뉴욕 필하모닉을 비롯한 미국 오케스트라들 역시 아직 중국을 클래식 발전의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진 않는다.

현존하는 최고의 르네상스-바로크 음악 페스티벌인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가 열리는 인스브루크의 암브라스성. (C) C. Gaio

현존하는 최고의 르네상스-바로크 음악 페스티벌인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가 열리는 인스브루크의 암브라스성. (C) C. Gaio

인스브루크는 '눈의 도시'이면서 티롤 지방의 주도(州都)다. 일찍부터 기악음악과 교회 합창음악이 여기서 영글었다. 정치 지도자가 음악에 기울인 관심에 따라 도시의 흥망이 갈리기도 했다. 티롤 사람들은 대체로 무뚝뚝하지만 주말에 시내에 나가면 전통 복장으로 춤과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겉으로는 관광객을 위한 보여주기식 행사로 보이지만, 그렇게 젊은이들이 춤과 노래를 부르면서 티롤의 민속음악이 보존되는 효과에 인스브루크시는 주목했다. 과거 오스트리아 시골에서는 흔한 풍경이었지만 이젠 독일이나 스위스ㆍ오스트리아의 독일어권 어디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오스트리아 민속음악은 보통 '요들'이라 불리는 요들러와 무곡을 반주하는 렌들러로 나뉜다. 산악 지역인 티롤에서는 마을마다 양치기가 부르는 캐럴이 다르다. 화음은 즉흥적으로 붙여졌고 하프나 실로폰과 유사한 토속 악기도 붙는다. 지역에서 활동한 바이올린 메이커들이 민요 보급에 돈을 내놨고, 신곡은 성악곡으로 번졌다. 알프스의 산세와 인 강(Inn 江)의 자연을 노래하는 시가가 발전하면서 도시의 경관은 음악 문화로 채워졌다.

현존하는 최고의 르네상스ㆍ바로크 음악 관련 페스티벌인 인스브루크 고음악 축제는 20세기 초반부터 자생적으로 이어지다가 1976년 도시가 두 번째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토대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565년 예수회가 김나지움을 세워 고등 합창음악 교육을 인스브루크에서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고음악 메카가 됐다. 종교개혁을 앞장세운 예수회는 독일어권 도시에 로마식 바로크 양식의 성당을 건립했고 선교에 성악음악을 활용했다.

1600년대 중반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은 교회음악과 야외용 트럼펫 음악을 권장해 성악 외에 기악 연주자들을 인스브루크에 모았다. 이때 티롤에 들어간 음악가 중에 아레초 출신의 마르칸토니오 체스티가 이탈리아의 명가수들을 도시에 끌어들였다. 마치 벨기에 출신의 명가수 르네 야콥스가 고음악 지휘자로 변신해 소프라노 임선혜 같은 우수 음악가들을 인스브루크에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창 성숙할 것만 같던 인스브루크의 음악 문화는 카를 대공에 이어 집권한 지기스문트 프란츠 대공의 무관심으로 쇠잔해졌다. 체스티는 이탈리아로 돌아갔고 음악 담당 조직들은 빈의 합스부르크가(家) 궁정으로 이전했다. 인스브루크에 모이던 음악가들이 만하임, 아우구스부르크, 하이델베르크로 분산됐다. 17세기에 개화하다 멈춘 티롤과 인스브루크의 음악사가 1976년 동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부흥을 맞이한 것이다.

평창 대관령음악제 메인콘서트에서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지휘하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의_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한 손열음 음악감독. 사진제공=평창 대관령 음악제

평창 대관령음악제 메인콘서트에서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지휘하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의_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한 손열음 음악감독. 사진제공=평창 대관령 음악제

올해 제3대 평창 대관령 음악제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손열음은 축제의 미래를 구상하느라 페스티벌 기간에도 여념이 없었다. 인터뷰에선 아스펜을 페스티벌의 모델로 언급했지만 본인이 찾아다닌 여름 축제들의 특징들을 한데 모아 강원도에 유산을 남겨주고자 한다.

알펜시아와 용평 리조트에는 골프장과 여름 별장이 있고, KTX가 개통되면서 서울 부자들의 '세컨드 하우스'를 겨냥한 부동산 임대도 활발하다. 외형적으로 평창은 아스펜을 모방하는 듯하다. 그러나 아스펜처럼 중국인이 평창에 들어온다면, 우리 반응은 어떨 것인가? 한한령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할 때 보인 우리의 모습은 어땠나. 제주도에 이어 중국이 투자할 만한 휴양지는 평창 아니면 부산이다.

강원도는 티롤처럼 산악 지역마다 전통이 다르고 노래가 다르다. 영월의 시집살이 노래와 평창의 시집살이 노래가 다르다. 태백의 물레질 소리와 인제의 베틀 노래가 다르다. 평창의 풀무 소리는 아이를 어르는 데 쓰였지만, 양양의 아이 어르는 소리는 '둥게 소리'라 했다. 일정한 줄거리를 가진 서사 민요를 지역에 따라 가사를 바꾸면서 후렴으로 강강술래를 넣었다. 티롤 방언으로 10절쯤 되는 긴 노래를 부르는 양치기 캐럴과 흡사한 토대다.

고래로 사회적 변동이 적었던 산악 지역 평창은 6ㆍ25전쟁으로 인구 이동이 심했던 고성과 화천, 인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서사 민요가 발달했고 그 모습은 티롤의 인스브루크와 아주 닮았다. 삼척과 강릉, 정선과 평창에서 전승되는 소중한 강원도 민요는 지금이야 직접적으로 음악제의 콘텐츠가 될 순 없지만, 언젠가 평창의 클래식 축제가 재창조할 문화유산이다. 인스브루크가 동계올림픽 개최를 통해 고음악의 르네상스를 맞이한 경과를 평창은 주시해야 한다.

한정호
객원기자,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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