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닉 프라이스(남아공) 세계연합팀 단장은 와일드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마지막까지 고심했다.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에 자력 출전이 가능한 선발 랭킹 10위 이내에 한국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방법은 단장이 2명의 선수를 추천하는 와일드카드 뿐이다. 보통은 아쉽게 탈락한 순서다. 당시 랭킹은 스티븐 보디치(호주)가 11위, 안병훈이 12위, 배상문이 19위였다.
결정권은 물론 프라이스 단장에게 있다. 공정성에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 최경주 부단장은 "배상문이 좋은 경기를 하고 군대에 간다면 더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했다. 하지만 배상문의 병역 논란을 간과했다. 한국에서의 병역문제는 대통령까지 낙마시킬 수 있는 성역이다. 귀국과 동시에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대학원(성균관대)을 다닌다는 이유로 국외 여행기간을 연장했다가 28세 이상이 되자 미국 영주권으로 다시 연장을 신청한 게 화근이 됐다. 병무청에서 거부하자 행정소송을 불사했고, 패소한 직후 입대를 선언했지만 수습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기소중지, 어떤 형태로든 입국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게 됐다. 배상문에게 프레지던츠컵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귀국할 수 있는 면죄부를 준 것과 다르지 않다.
안병훈은 지난 5월 유러피언(EPGA)투어 메이저 BMW챔피언십을 제패하는 등 기량 면에서도 배상문 못지 않다. 지난달 20일 인천 베어스베스트 청라골프장에서 끝난 신한동해오픈 우승으로 여자골프에 비해 열세를 보이고 있는 코리언투어를 활성화시키는 일등공신 역할까지 톡톡히 수행했다. 베어스베스트가 바로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코스라는 점이 아이러니다.
배상문은 그래서 침묵으로 특혜(?)에 보답해야 한다. 21개월의 경력 단절은 이 땅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좋은 경기로 불찰을 만회하겠다"는 자세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프레지던츠컵은 국가대항전이 아니고, 금메달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군 복무를 이행하면서 체력 단련과 강철 멘탈을 만드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전역 후 1년간 유예된 PGA투어카드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그게 국민에게 빚을 갚는 길이다.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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