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에서 한 번도 돈을 따본 적이 없다는 고객입니다.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이랍니다. 그나마 조금 남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캐디에게 미리 "언니, 오늘 나 좀 잘 봐죠"라고 조용히 일러둔다네요. 제 오랜 캐디 경력으로 어림잡아 봐도 실력이나 멘탈이 돈을 딸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동반자들은 완전히 나간 공을 두 눈으로 봤지만 떡 하니 살아있으니 더 이상 뭐라고 할 말도 없습니다. 몇 홀이 지난 후 공을 고속도로까지 날려 보낸 이 분께 또 행운이 따라줬습니다. 근처 러프에 방금 친 공과 똑같은 공이 있지 뭡니까. 주위에서는 제가 '알을 까줬다'며 난리가 났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음 홀부터 결국 구분하기 좋은 컬러공으로 교체했습니다.
또 다음 홀, 이번엔 그린 뒤로 넘어간 공이 나무 밑에 예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저만 아는 비밀이었지만 브랜드와 색깔만 같았지 번호는 다른 공이었지요. 하지만 동반자들은 똑같이 생긴 공이 살아 있으니 우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누군가 찾지 못하고 간 게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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