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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나의 캐디편지] "비기너 티가 따로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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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올리는 '왕초보' 네 명을 한 팀으로 만나는 건 절대 흔한 일이 아닙니다.

보통은 '고수'가 동반해 이것저것 알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캐디일도 나눠서 도와주는 일이 다반사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느 날 초보자 네 명만이 한 팀으로 입장했습니다.
그동안 연습만 하다가 '필'을 받아 바로 부킹했답니다. 레슨프로께서 "아직 필드 경험은 무리"라고 극구 말렸다지만 한국 남자들 성격 무지 급합니다. 코치 몰래 나왔답니다.

첫 홀 티오프를 앞두고 궁금한 게 많은 한 분이 먼저 물어봅니다. "저기 노란색 돌멩이(티잉그라운드 마커)는 뭐예요?" 제가 대답합니다."시니어 티잉그라운드에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 그럼 우리는 여기서 쳐야겠네"라며 눈 깜짝할 새 네 명이 시니어 티로 달려가 티 샷 준비를 합니다. 너무 황당해 소리칩니다. "고객님, 잠깐만요" 하지만 말릴 틈도 없습니다.

티 샷을 대충 끝내버리고는 "스카이72 골프장이 최고"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합니다. 기분이 너무 좋은 고객들께 시니어 티는 연세 드신 분들이 치는 곳이니 화이트 티(레귤러 티잉그라운드)로 가자는 말을 차마 못했습니다. 공이 맞든, 안 맞든 잔디를 밟는 것 자체가 즐거운 모양입니다. 지금은 경치를 즐길 여유도 없을텐데 우리 골프장이 뭐가 그리 좋다는 걸까요?
사실 레이디 티와 비슷한 위치에 자리 잡은 시니어 티는 진짜 나이든 골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비호감' 티잉그라운드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입이 간질거립니다. 라운드가 끝날 무렵 여쭤봤습니다. 고객께서는 "여기가 비기너 티라면서요. 못 치는 사람들을 위해 티를 따로 만들어주는 골프장이 어딨어요? 역시 스카이72가 최고야"라고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제가 처음에 '시니어 티'라고 대답한 걸 '비기너 티'로 잘못 알아들었나 봅니다. 에고, 정말 순수한 왕초보골퍼들이십니다. 나중에 시니어 티라는 걸 알려드리니 오히려 서운해합니다. "그럼 다음에 못 치는 거예요? 100타 깰 때까지는 여기서 치려고 했는데…" 순수한 비기너 네 명 덕분에 오늘도 골프장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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