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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62] '피에타' 앞에서

최종수정 2020.02.11 16:34 기사입력 2019.10.0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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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

윤재웅

가까운 지인 중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있습니다.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 서른 갓 넘긴 외아들을 잃고 통절하게 곡하는 그녀를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습니다.


깊은 불심의 소유자지만 이제 그만 집착을 끊으라는 말씀도, 아들을 자유롭게 보내주라는 당부도 소용없습니다. 절에서 3년간 매일 기도합니다. 기도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그녀. 이 세상 모든 어머니만이 가지는 서러운 모성을 봅니다. 가까이에서, 그저, 지켜만 볼 뿐입니다.

역사 이래 이런 어머니가 한두 분이겠습니까. 전쟁통에, 질병과 사고의 와중에, 청청한 아들들이 새파라니 얼어서 떠가는 구름처럼 어머니 품을 떠났지요. 정처 없다…, 춥겠다…, 우리 아들…! 서럽기만 해서 인생을 어찌 살겠습니까. 슬픔을 찬란하게 만드는 노력은 남은 이들의 몫입니다. 찬란한 슬픔. 여기 바티칸 성당에 와서 슬픔조차 찬란하게 만든 절정의 예술을 봅니다. '피에타'. 부드럽게 늘어진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올려놓고 그 어깨를 자신의 팔로 받친 채 가슴으로 껴안는 어머니. 극한의 비탄을 장엄한 순종으로 승화시키는 그녀는 성모 마리아입니다.


'슬픔' 또는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을 가진 피에타는 서양 예술의 주요 주제입니다. 회화와 조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요. 14세기 초 독일에서 발전한 피에타는 북유럽에서 유행하다가 미켈란젤로(1475~1564)에 와서 절정에 이릅니다. 전무후무한 최고의 형상. 그의 앞으로도, 그의 뒤로도, 그보다 뛰어난 피에타를 만들지 못합니다.


당시 작가는 스물네 살 청년이었습니다. 청년 미켈란젤로의 패기만만한 예술 투혼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인간의 보편적 감성에 호소합니다. 처연함과 아름다움이, 인간의 슬픔과 신의 숭고함이 함께 살아 있지요.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사랑과 슬픔의 심오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솟아납니다. 무릎 꿇어 기도하는 사람,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사람…. 지난 500년간 피에타는 수많은 사람을 감화시켰지요.

감화(感化)는 높고 아름다운 가르침입니다. 지적이고 도덕적인 가르침보다 위에 있지요. 진정한 감동은 상상이 아니라 체험입니다. 인체의 가장 깊은 심연과 인체의 가장 높은 절정이 하나로 관통되는, 신의 경지에 오르는 환희심. 이 환희심이 사람을 바꿉니다. 예술가가 사람들과 만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지요. 작가의 나이가 무슨 대수입니까.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살아갈 때 '작가'입니다. 그토록 젊은 청년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어머니의 심오한 슬픔'을 어찌 저리도 아름답고 숭고하게 창조했는지 감탄하지 않아도 됩니다. 작품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작가. 이런 법칙을 젊은 청년은 잠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윤재웅의 행인일기 62] '피에타' 앞에서

1499년 완성된 이 작품을 보고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지만 정작 작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합니다. '정말 아름답고 심오한 작품이야. 헌데 작가가 누구지?' '글쎄, 시골 출신의 젊은이라던데….' 혈기 방장한 젊은 예술가는 참을 수 없었지요. 밤에 몰래 성당에 들어가 조각 작품 안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습니다. 성모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 쪽으로 길게 흐르는 옷깃에 '피렌체에서 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다'라고 추가 새김작업을 합니다. 서명을 하고 나와 밤 들판을 거닐며 아름다운 별들을 보고 감탄하는 미켈란젤로. '저토록 아름다운 별들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지상에 아무런 서명을 남기지 않으시는데 나는 도대체 무얼 한 거지?' 하면서 반성했다고 전합니다. 그 뒤론 자기 작품에 서명을 하지 않습니다.


바티칸 성당 주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오른편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피에타. 방탄 유리관 속에 있습니다. 가까이 갈 수 없어 먼발치에서 바라봅니다. 생각의 필름이 과거로 돌아갑니다. 1972년 5월21일 한 정신병자가 망치를 들고 피에타에 테러를 가하는군요. 헝가리 출신의 호주인 라즐로 토스는 '어머니의 찬란한 슬픔'을 열다섯 번이나 내리칩니다. 성모의 코와 팔이 잘려나가고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집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사람들은 그제서야 테러범을 제압합니다. 바티칸 성당 피에타 앞에서 위대한 예술작품의 수난을 회상하는 시간. 복원작업은 잘 이루어졌지만 성모는 이제 유리관 속에 갇혀 있습니다. 서러운 찬란함이 주는 감화의 환희심, 옛 사람만큼 함께하기 어렵습니다.


생각해보니 진정한 예술품은 전무후무한 명품 조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 가까운 일상에 있습니다. 기도하는 그 어머니, 살아 있는 예술입니다. 먼저 간 아들 간절히 사랑하는 그녀의 천일기도는 얼마나 찬란한지요. 여기 바티칸 성당 어머니의 찬란한 슬픔 앞에 서니 가슴 더욱 뭉클합니다. 불현듯 어머니 전화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구순 노모가 통화 마지막에 늘 하시는 말씀. 간절하고 애틋합니다. 제게는 가장 높고 빛나는, 감동적인 공연입니다. '우리 아들, 사랑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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