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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오만海 사태와 한국

최종수정 2019.06.18 10:57 기사입력 2019.06.1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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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김봉수 특파원] 현대 문명의 또 다른 이름은 석유 문명이다. 석유는 단순히 전깃불을 밝히는 발전기나 자동차의 연료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구매하고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들의 재료가 되거나 제조 공정에 쓰인다. 옷, 껌, 장난감, 종이, 소화기, 단열재, 비닐봉지, 각종 플라스틱, 페인트 등등 우리 주변의 생필품 중 석유와 관련이 없는 것은 찾아 보기 힘들다. 석유가 없다면 인터넷도 없다. 농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파종, 재배, 수확, 운송 등 농산물 생산ㆍ유통 과정의 극히 일부분에서만 석유를 배제하고 있을 뿐이다.


인류는 19세기 말부터 등화용, 난방용, 자동차 연료용으로 시작해 석유를 사용해왔다. 지난 150년 동안 석유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매장량이 바닥났다는 이유로 석유 문명 종말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채굴기술이 발달하면서 석유문명의 시한은 다시 연장된 분위기다. '셰일 오일'이 그 주인공이다. 인류는 수천m 지하에 구멍을 뚫고 강한 수압으로 암석을 분쇄해 그 내부에 포함돼있던 석유나 천연가스, 경유 등을 뽑아 올리는 기술을 발명해낸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석유 문명의 주도권은 석유를 가진 자가 쥐고 있다. 인구도 몇 명 안 되는 사막의 유목민에 불과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랍의 맹주 행세를 하는 것은 하루 평균 1200만배럴(2015년 기준)에 달하는 원유 생산으로 벌어들이는 오일 머니의 힘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스웨덴에서 만난 '라테파파(육아휴직남)'들도 결국 북해에서 나오는 천연가스와 석유가 뒷받쳐 주고 있다. 옛 소련 붕괴 후 이렇다 할 산업조차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러시아가 여전히 큰소리치는 것도 하루 평균 1100만배럴(2015년 기준)씩 펑펑 쏟아져 나오는 석유가 밑바탕이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석유의 힘이다. 2016년 기준 미국의 석유생산량은 하루 평균 1500만배럴을 돌파해 세계 1위 자리를 수십 년째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셰일오일 시추 기술의 발달로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를 생산하면서 자체적으로 필요한 물량을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미국은 2차세계대전 승리 후 달러화를 기축 통화로 만든 브레턴우즈 체제를 바탕으로 성립된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하는 명분으로 이른바 '항행의 자유' 수호를 내세워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불행히도 이런 석유문명하에서 '한 방울'의 석유도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석유류 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중동 지역이 또다시 위기 일보 직전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오만해에서 발생한 유조선 2척 피격 사건의 여파로 미국은 군사적 대응 카드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미국이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이란을 '제압'하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 있어 당분간 갈등이 고조될 것이 뻔하다. 이와 반대로 미국이 고립주의 정책을 강화해도 문제다. 미국이 항행의 자유 수호 등 기축 통화국의 역할을 하지 않고 아메리카 대륙에 안주할 경우 앙숙지간인 이란ㆍ사우디 간 지역 분쟁이 악화돼 자칫 중동 화약고가 전 세계 정세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나라는 포성이 오가는 걸프만을 통과해 기름을 실어날라야 한다. 하루 평균 약 240만배럴 안팎인 한국의 석유 수입 물량 중 무려 85% 안팎이 중동산이다. 이지스함, 항공모함 등 원양 해군 전력이 부족해 중동 분쟁 발발 시 원거리 수송 작전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것도 힘들다. 석유를 구입해도 안전하게 싣고 올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그럴 때 중국과 러시아는 그렇다 치더라도 '동맹'인 미국과 일본도 한국을 도와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자국에 남아 도는 석유류를 비싼 값에 강매(미국)하거나, 이참에 눈엣가시 같은 이웃나라를 손봐주겠다고 달려 들(일본) 가능성이 높다. 1970년대 1, 2차 석유파동 후 지속적ㆍ안정적인 석유 공급 체계 구축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필수 과제였다. 한국은 '수입국 다변화'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이런 한국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최근 오만해 유조선 피격 사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대(對)이란 대응을 위한 동맹국들의 협력을 요청하면서 구체적으로 한국과 일본, 중국을 언급했다. 그는 한ㆍ중ㆍ일이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석유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호르무즈)해협이 계속 열려있게 하는 데 깊은 관심이 있는 국가들을 확대, 우리가 이 일을 해나가는 데 도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미ㆍ중 무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해 곤혹스러운데 자칫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또 다른 외교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처지에 놓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뉴욕=김봉수 특파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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