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조때 학자인 홍만종은 '순오지(旬五志)'에 역사와 함께 여러 속담과 격언을 적었다. 그중에서도 후세에 가장 알려진 격언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중학생 정도면 뜻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격언이다. 사후약방문은 사람이 죽은 후에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미리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말해주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금감원은 과거 자신들이 감리한 즉시연금 보험 상품이 약관 문제로 이슈가 되자 뒤늦게 구제를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즉시연금 일괄구제 카드를 꺼내들며 '소비자 보호'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웠다. 현 정부 금융정책의 최대 모토인 소비자 보호는 금융 약자 보호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즉시연금은 금융 약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시연금은 출시 초기부터 '부자연금'으로 불렸다. 국민의 노후 보장이 목적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이율과 비과세 혜택이 합쳐져 고액자산가들의 투자 상품으로 탈바꿈했다.
금감원이 명분만 잃은 게 아니다. 실리도 얻지 못했다. 보험사들을 압박하면 백기를 들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보면 반대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삼성생명은 금감원의 일괄구제 요구안을 거부하며 법적인 소송을 불사하고 있다. 다른 보험사들도 아직까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감원이 당혹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억지 명분을 내세우며 무리수를 뒀지만 얻은 게 없다는 얘기다.
이제 금감원이 택할 카드는 많지 않다. 전가의 보도인 보복 검사도 쉽지 않다. 스스로 하지 않겠다고 국회의원들 앞에서 공개 선언했다. 그렇다면 금감원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지켜보는 눈이 많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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