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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금융권을 휘감은 '넛지 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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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지난 10월 경제학계의 '아웃사이더'로 꼽히던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는 전통 경제학의 가설을 뒤집었다. 인간을 부분적으로만 합리적이며 불완전하다고 정의한다. 합리적 선택으로 유도하도록 부드러운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넛지(Nudgeㆍ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론이 나온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의미를 지닌 영어 단어다.
최근 국내 재계와 금융권에서 정부의 '新官治(신관치)'를 빗대어 '넛지 관치'라는 말도 나온다. 시작은 금융권 수장 인선의 스타트였던 손해보험협회 차기 회장에 관출신들이 부상되면서 부터다. 민간 출신들이 배제되고, 관료를 지낸 인사들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자, 이전 정권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국감에서 "올드보이의 귀환을 막기 위해 대통령에게 직언도 불사하라"는 의원 요구에 "그럴 우려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발언하며 뒤늦은 진화에 나섰다.

이 한 마디에 금융권이 요동쳤다. 이어진 은행연합회장과 생명보험협회장 인선 과정에서 당국의 넛지 가이드라인이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각 협회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올드보이들을 미는 세력의 힘이 많이 죽었다. 결국 두 협회는 당초 유력하게 언급됐던 관 출신 대신 민간 출신 회장들이 차지했다.
넛지 관치는 금융지주의 최고경영자(CEO)를 겨냥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라는 금융당국 두 수장이 "금융지주 CEO 선임 과정이 불공정하다. 일부 대기업 그룹에 속한 회원사 출신이 그룹의 도움을 받아 회장에 선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돌연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내가 척결 대상이나 사형 대상은 아니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 같았다"며 연임 포기 의사를 밝혔다.

하나금융지주 이사회에서는 한 사외이사가 사퇴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금융당국에서는 과거 정권처럼 대놓고 누구를 찍어내는 과도한 개입은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시장이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어 최소한의 개입만 하겠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금융권이 피부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금융당국의 최근 스탠스를 보면 부드러운 개입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슈퍼갑인 그들의 슬쩍 찌른 옆구리에 힘없는 '을'들은 카운터펀치로 쓰러질수도 있다.

해외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최근 넛지론을 강력 비판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넛지에 대해 "진정한 자유는 후회할 것조차도 자신의 책임으로 해볼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될 때 가능하다"며 기업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당국은 부드러운 개입이 금융사들의 자율경영을 해칠 수 있다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비판도 귀기울여야 할때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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