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뉴스가 봇물을 이루던 그날 밤 한 언론은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뿐 아니라 국무회의, 수석비서관회의 발언까지 사전에 받아본 흔적이 드러난 태블릿PC를 입수해 보도했다. 해당 언론사는 보도 직후 태블릿PC를 증거자료로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분석 작업에 착수했다. 태블릿PC의 존재가 알려진 다음 날 오후 박 전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서 사과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진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관계에 대한 의구심만 증폭시켰다.
지난해 11월 말 세 번째 사과 자리에선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불거진 공범 논란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다시 한번 혼돈의 승부수를 던졌다. 자기 반성도, 국난 수습을 위한 결단도 없었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같은 전략은 태블릿PC라는 물적 증거와 들불처럼 일어난 여론에 처참하게 무너졌다. 진정성 없는 국민과의 대화는 스스로를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라는 궁지로 몰아넣으며 퇴로를 차단했다.
석 달 동안 이어진 탄핵심판 과정에서는 사건의 정치공방화에만 몰두했다. '석고대죄'로 정면돌파할 기회도 잃었다. 다수의 국민들은 '울화'를 얻었지만 그 덕에 진실 앞에 한발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권력에 대한 '의심증'의 반대급부로 '견제와 감시'의 필요성을 절절히 깨달았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