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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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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대표 작가인 정영문은 9년 만에 선보인 소설집 '오리무중에 이르다'에서 기승전결이 없는 의식적 중얼거림을 선보인다. 불능 상태를 연상시키는 의식의 흐름은 결론을 낼 수 없는 불안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하나의 마침표로 끝나지 않는 모양새가 요즘 혼돈의 정국과 쏙 빼닮았다.

오상도 정치부 차장

오상도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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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는 또 어떤가. 봇물을 이룬 '법정 드라마'에선 권력의 횡포와 대중의 분노가 넘쳐난다. 부패한 권력과의 투쟁은 마치 뉴스를 접하는 듯 피로감을 안긴다. 방송계 관계자는 "진부한 선악 대결과 이분법적 프레임은 '촛불'과 '태극기'로 나뉜 탄핵 정국과 엇비슷하다"고 규정했다.
지난 10일 우리는 민주 공화국 발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역사의 단면을 목도했다. 지난해 10월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뒤 타올랐던 촛불시위는 기어코 정권 퇴진으로 일단락됐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탄핵심판 주문(主文)은, 마치 주술사의 주문(呪文)처럼 90여일간 이어져온 탄핵 정국의 사슬을 끊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마침표를 찍기보다는 행을 바꿔 새롭게 글을 써 나가는 행위와 다름 없었다. 쾌활한 명랑소설이 될지, 음울한 비극이 될지는 국민들의 손끝에 달렸다. 이 권한대행이 사흘 뒤 치른 퇴임식에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토로한 이유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도리를 일깨웠지만 선고가 남긴 생채기는 아직 씻기지 않고 있다. 탄핵에 불복한 '아스팔트 보수(태극기 집회 참가자)'는 거리에 쏟아졌고, 탄핵 이후 닥칠지 모를 경제ㆍ안보 위기를 우려하며 한숨짓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반면 광장에선 샴페인이 터졌다. 외신들은 탄핵 심판날 밤, 거리 곳곳에서 벌어진 '치맥 파티'를 대서특필했다.
이런 가운데 '포스트 탄핵' 정국에서 곱씹어야할 역사의 장면들도 있다. "불행한 역사"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17세기 잉글랜드의 찰스 1세를 처형한 크롬웰 장군의 "잔혹한 숙명"이란 자조와 잇닿아 있는지 모른다.

프랑스대혁명도 마찬가지다. 18세기 말 파리광장은 혁명재판소의 루이 16세 처형 소식에 환호성이 울렸다. 하지만 권력 투쟁이 본격화한 뒤 광장의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은 시민은 4만명이 넘었다.

다행스러운 일도 있다. 우리가 위정자를 단죄하는 데 있어 '법치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발발한 '재스민 혁명'은 단박에 아프리카와 아랍권의 정세를 바꾸어 놓았다. 민중봉기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으나 힘의 공백을 초래하며 내전이란 끝없는 혼란을 초래했다. 이미 '4ㆍ19혁명' 등 질곡의 세월을 거쳐 민주주의를 체득한 우리는 이들과 달랐다.

아쉬운 점도 있다. 민주주의는 나와 다른 생각을 서로 인정하되 법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탄핵에 찬성한다면, 불복할 자유도 있다. 16세기 영국의 '사상 검열법'을 적용하는 게 아니라면, 또 박 전 대통령의 추종자들이 법질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관용하는 것 또한 민주주의다. 마찬가지로 법치에 근거해 우리는 '자연인' 박근혜를 법정에 세울 권리도 갖고 있다. 진정 우려되는 건 치열한 다툼 속에서 논리가 실종됐다는 사실이다.








오상도 정치부 차장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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