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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이재용 보다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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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삼성 경영진과 오너 일가에는 눈엣가시일지 모르지만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투자자에게는 고마운 존재이다. 엘리엇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면서 국내 증시에 다시 등판하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주식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도 삼성물산에 투자했다가 원금을 까먹고 속앓이를 하다가 엘리엇 덕에 원금을 회복해 털고 나온 이도 있고, 삼성전자 주가가 급등한 틈을 타 짭짤한 이익을 본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이재용보다 엘리엇이 낫다”고 말한다.

피땀 흘려 번 돈을 투자하는 투자자에게는 자신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사람이 가장 좋은 친구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에 투자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돈이 되는 곳에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유명한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는 제안서를 보내자 삼성전자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삼성물산 주가도 하루에 8% 가까이 급등했다.
기관투자자는 빼어난 선구안으로 좋은 주식에 투자하는 게 중요하지만 엘리엇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1위답게 삼성그룹의 급소를 정확히 겨냥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를 이슈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혹자는 삼성그룹의 가려운 곳을 겨냥했다고도 한다.

엘리엇이 겨눈 게 급소인지, 가려운 곳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주가가 올랐다는 것이다. 엘리엇의 ‘액션’을 보면서 우리 기관투자자들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엘리엇은 고작 삼성전자 지분 0.62%만으로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한국 증시를 들었다 놨다 하는데 우리 기관투자자들은 있는 권한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기관투자자라면 오너의 주주권익 침해에 적극 맞서야 하지만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거수기 노릇만 할 뿐이다.

삼성전자와 맞서는 바람에 국내에서는 엘리엇을 '해외투기자본'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유별난 펀드가 아니다. 엘리엇 같은 '행동주의 펀드'는 전 세계적으로 400개에 육박하고, 이들이 굴리는 돈은 1300억 달러(약 152조원) 정도 된다. 수익률도 높다. 2005년 이후 지난 8월까지 '일반' 헤지펀드가 연평균 1.3% 수익을 올리는데 그친 반면,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연 8.8%의 성과를 내고 있다. 경영진의 말이라면 무조건 '예스'라고 하지 않고 배당확대나 지배구조 개편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해 주주들의 권익을 챙기는 것도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요인이다.
국내 기관투자자가 자신이 투자한 기업과 맞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해당 기업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나 위상이 큰 것도 있지만 그 기업과 이해관계가 있는 기관이 많은 탓도 있다. 영화 ‘대부3’에서 세계 최대 부동산 회사 회장인 돈 루체시는 “금융은 권총과 같고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라고 말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게 금융이지만, 경제 논리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여러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건 쉽지 않다. 방아쇠를 당기는 게 힘들다고 기관투자자가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급소를 겨누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그게 부담스럽다면 가려운 곳이라도 겨눠야 한다. 엘리엇처럼.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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