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콜롬비아까지 가는 20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월호 1주기를 피하려고 출국하는 것이란 오해는 매우 억울했을 것이다. 그럴수록 가시적 성과를 보란 듯이 들고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은 박 대통령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말이 좋아 세일즈 외교지 사실 장사하러 가는 길 아닌가. 어떻게 하면 물건을 잘 팔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불법 자금을 받은 총리에 대한 처리방식을 동시에 고민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콜롬비아 물 문제는 어떤가요." 물이 부족하다면 수자원공사의 물관리 종합대책을 팔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콜롬비아는 미국보다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한 물부자 나라다. 박 대통령은 산또스 대통령의 물 자랑을 한참 들어야했다. 조금이라도 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함에 참모들 조언도 없이 즉석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물건 보따리를 풀다 민망해진 대통령의 낙심한 표정을 참모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촘촘한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가던 20일 박 대통령은 총리의 사의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결정은 과거 문고리 3인방을 처리했던 방식과 대비된다. 박 대통령은 "그들에게 죄가 발견된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민심에 맞섰다. 이 총리 역시 수사결과를 기다린 뒤 죄가 발견되면 경질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이틀 뒤 한ㆍ칠레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한 박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8일이나 계속된 강행군에 박 대통령은 행사 도중 의자에 앉아 깜빡 졸기까지 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경제 성과가 정치 이슈에 매몰돼 버린 상황을 개탄했다. 정치 이슈는 한 순간 지나면 그만이지만 경제는 계속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안 수석은 말했다.
그의 간단한 논리를 국민들이 수긍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사실 간단한 것인지 모른다. 문고리 3인방이 아닌 이완구 방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 국민도 대통령을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민심에 맞서지 않는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서지 못할 이유도 없다. 풍성한 경제성과를 들고 환한 표정으로 귀국 전용기에서 세 번째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산티아고(칠레)=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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