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두 번 다 천왕봉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노고단 산장에서 뜨는 해에 만족해야 했다. 비록 날씨 때문이 아니라 스케줄 확인을 못한 무지와 계단에 무릎 꿇은 '저질' 체력 때문이긴 했지만 그 장엄한 광경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들 하니 애꿎은 조상 탓을 하면서 하산했던 기억이 있다.
자녀 조기유학에 아내를 딸려보낸 '기러기 아빠'는 대부분 물리적 거리 때문에 국내에 홀로 남아 유학비와 생활비까지 챙기는 '외로운 돈버는 기계'로 살고 있다. 50만명으로 추정되는 기러기 아빠는 고독과 생활고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간혹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 기러기 아빠에 비하면 국내 기러기는 가족을 지천에 두고 주말마다 만날 수 있으니 만고에 편하다는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의 바가지에서 자유롭고, 아내는 아내대로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없으니 더할 나위 없다는 그럴듯한 설명까지 더해진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나는 축하(?)받을 만큼 마냥 즐겁지는 않다. 애초에 우리 부부는 지방 이전을 쌍수를 들어 찬성했다. 둘 다 지방 출신인지라 빽빽하게 모여사는 퍽퍽한 서울 살이보다 낫겠다 싶었다. 거기에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거대한 담론에도 함께 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러나 정작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이것저것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해 전학한 학교에서 잘 적응할까도 걱정이었다. 겨울방학을 포함해 두 달간은 많지도 않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지내야 했다. 정부정책에 동조한 것 뿐인데 이렇게 가족이 생이별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법. 주말이면 꼬박꼬박 내려가는 건 가족의 힘이 아닌가 새록새록 느낀다. '일요일 저녁에 올라가니 그날은 아무 것도 못하겠다'는 아내의 투정이 월요일 새벽 서울행으로 시간대를 바꿨지만 되려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애정 어린 부탁으로 들린다. '아저씨 누구세요?'라며 장난기 섞어 이야기하는 아이는 예전보다 더 살갑게 달라붙는다. 가족애의 재발견이 아닐까 위안 삼는다.
아무튼 삼대가 덕을 쌓았다고들 하니 이참에 천왕봉 일출에 재도전 해봐야 하나 싶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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