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분법을 사람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외모가 수려한 사람과 내면이 더 아름다운 사람, 말이 앞서는 사람과 귀가 밝은 사람, 이성이 지배하는 사람과 감성이 충만한 사람, 촉이 좋든지 아니면 둔한 사람, 칭찬으로 고래도 춤추게 하는 사람이거나 힐난으로 일관하는 사람, 자신을 낮춰 함께 높아가는 사람과 남을 짓밟아야만 올라선다고 믿는 사람, 기본적으로 타인을 믿는 사람과 불신이 가득한 사람 등.
그래서 머리가 크고 나서 쭉 가져왔던 나만의 변하지 않는, 그러나 어쭙잖기 그지없는 진리(?)를 떠올린다. 내가 그 사람을 A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도 나를 A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법칙은 참 오묘한데, 그 사람이 나를 A가 아니라 다르게 생각한다손 치더라도 그 범위는 적어도 A'나 A" 정도이지 엉뚱하게 B나 C라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대학 신입생 때 한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기막힌 '인간관계 거울론'이라며 무릎을 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분법이 극명하게 드러나면서도 인간관계의 거울론을 기대할 수 없는 집단이 있다. 바로 국회 안 정치인들이다. 6ㆍ4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여야가 전력을 가다듬고 있다. 이제 슬슬 '내 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이분법적 정쟁이 다시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기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1심 판결 결과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린다. 지난 12일 황교안 법무ㆍ서남수 교육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무산된 것을 두고서도 서로에게 공세의 칼끝을 겨누고 있다.
굳이 이분법으로 구분하면 감히 나는 사람을 믿는 축에 속한다. 그 사람도 나를 믿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믿지 않으면 그만큼 피곤해지니 그 또한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를 믿게 하려면 내가 먼저 그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정언명령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우리 국회를 믿어보려 한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아집을 버리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국회를 기대하면서.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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