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체 직원의 4분의 1을 구조조정하는 증권사가 나오는가 하면 아예 문을 닫게 생긴 곳도 나왔다. 중견 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명예퇴직은 한두 회사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주말 현대증권이 공식 매물로 나오면서 인수합병(M&A) 시장도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공식 매물로 나온 대형 증권사만 벌써 둘이다. M&A가 되면 인력 구조조정은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다.
한 대형증권사 사장은 "올해가 외환위기로 인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가장 어려웠는데 내년은 더 어려울 지 모른다"고 요즘 상황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심리가 업계 전반을 휘감고 있다 보니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과감한 투자에 나서기 보다 최대한 움츠리며 버티기 전략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등 시장참여자들뿐 아니라 한국거래소(KRX)를 비롯한 시장의 인프라격인 증권유관기관에도 이어지고 있다. 내년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가 하면 직원들의 연차 사용까지 독려하면서 비용을 줄이고 있다. 증권사들로부터 회비를 받는 금융투자협회나 거래수수료 수익에 의존하는 거래소 입장에서 업계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호황때처럼 돈을 쓰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고통분담 차원에서라도 허리띠를 같이 졸라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경제가 위기에 처하자 양적완화(QE)란 이름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경기가 죽은 후에는 헬기로 공중에서 돈을 뿌려도 회복되기 힘들다며 무제한 발권력을 마음껏 이용했다. 덕분에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가 비교적 빠른 시간에 회복을 할 수 있었다. 당시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이 없었다면 지금 사상최고가 기록을 경신하는 미국증시도 없었을지 모른다.
최경수 이사장 체제를 맞아 한국거래소가 최근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취임 100일을 맞는 내달 9일이면 최경수호의 마스터플랜이 공개된다. 이 계획의 주된 내용이 허리띠 졸라매기가 아닌 시장 활성화를 위한 과감한 투자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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