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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브레이크 고장난 선배가 보고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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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브레이크가 고장난 선배가 있다. 십수년을 더 사신 분이니 마땅히 존칭을 해야겠지만 지면을 핑계삼아 경어체는 생략하자. 이해해 주실테지. 술 이야기다. 그 선배와의 술자리는 늘 비슷하다. 1차에 시동을 걸고 2차때 액셀을 밟고나면 이후엔 가속도가 붙어 어떤 제동도 잘 듣지 않는다. 다음날엔 간밤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걸로 봐서 술이 세지도 않은 분 같다. 그런데도 그 선배는 이곳 저곳 자리를 옮겨 '한잔만 더'를 외친다.

그 정도면 으레 사고가 날 법도 한데 그 선배가 사고를 친 걸 본 일이 없다. 사고쳤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다. 술자리에서 흥에 겨워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는 충돌 사고도 없었고 술값을 안 치르고 '토끼는' 뺑소니 사고를 낸 적도 없다. 게다가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가 대거리를 하더라도 그저 허허로운 미소만 지으니 텅빈 미소에 담긴 너그러움에 그 선배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세밑이 다가오면서 돌이켜보니 올해 인생 자체의 브레이크가 파열된 인물들을 심심찮게 접한듯 싶다. 이들은 보통 안하무인 격으로 여기 저기 휘젓고 다니다가 충돌과 추돌 사고를 부지기수로 내고 결정적인 순간에 뺑소니를 치고 잠적하는 경우가 많다. 브레이크 '정비'가 시급하지만 정작 자신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줄 모른다. 그러니 탈이 날 밖에.

가장 기억나는 인물로는 단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떠오른다. 인수위 시절부터 '단독기자'를 자처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기삿거리가 안된다'고 못을 박거나 '영양가(기사 가치)가 있고 없고는 대변인이 판단할 수 있다'는 등의 말로 구설에 올랐던 그다. 급기야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 'grab(움켜쥐다)'이라는 영어 단어를 온 국민의 뇌리에 새기는 성추행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올해 유독 부각된 여러 갑(甲)들도 빼놓을 수 없겠다. 대리점주에 폭언을 한 본사 영업사원부터 스튜어디스를 시종 부리듯 한 '라면 상무', 호텔 직원의 뺨을 지갑으로 친 '빵 회장'까지 우월적 지위에서 을(乙)을 막 대하는 일들이 봇물이었다. 이런 '절대 갑'들은 그렇잖아도 답답한 국민의 마음을 어지간히 갑갑하게 했다. 여대생을 청부살인하고도 허위진단을 받아 병원에서 호의호식한 한 사모님에 이르러선 공분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 따뜻한 인간애와 진정성. 자신의 말을 하는 입보다 다른 이의 말을 듣는 귀. 브레이크가 고장난 선배가 갖고 있는 이런 휴머니티와 자꾸 대비된다. 예의라는 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쌍방의 교환이라는 것을, 힘 가진 자나 어른이 약자와 아랫사람을 배려할 때 더욱 빛이 난다는 사실을 이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배운다.

보통 이들은 나름 안전장치를 해둔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험(?)을 드는 게 상례인데 그런 보험은 사고가 나는 순간 자동으로 만기 해지된다. 보험을 들어준 이도 같은 부류이기 때문이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선배는 이런 보험이란 게 있을 리 없다. 안전 귀가를 위해 택시를 잡아 꼼꼼하게 안내하거나 그것도 못 믿어우면 댁까지 잘 들어가는지 먼 발치서 지켜봐 주는 후배들이 바로 보험인 것이다. 쌀쌀한 날씨만큼 사회 기류도 스산하다. 브레이크 고장난 그 선배나 꼬드겨 추억이라도 한잔 해야겠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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