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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선진국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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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8개월만의 재방문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3월의 그 끔찍했던 대사건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이지요. 굳이 ‘방사능’을 몸으로 체험하러 가냐며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습니다만, 우려와는 달리 그다지 큰 변화를 읽어낼 수 없었습니다. 전력 부족으로 일년 내내 ‘불야성’인 긴자의 조명이 조금 약해지기는 했더군요. 관동 대지진이나 코베 대지진 때처럼 그들은 슬픈 과거를 잊고 다시 한번 미래로 열심히 향하고 있었습니다.

직업 의식 때문에 일본에선 꼭 극장을 찾습니다. 일본 영화의 현재를 남들보다 더 빨리 목격하고 싶은 욕심이죠. 이번에는 두 편의 일본 영화를 봤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애니메이션 ‘고쿠리코 언덕에서’와 쟈니즈 인기 아이돌 그룹 ‘SMAP’의 막내 카토리 싱고가 주연한 3D 액션 블록버스터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더 무비: 카치도키 다리를 봉쇄하라!’가 바로 그 영화들입니다. 영화의 퀄러티는 그저 그랬습니다. 지브리 유일의 실패작인 ‘게드 전기’에 이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남 미야자키 고로가 또다시 연출을 맡은 ‘고쿠리코 언덕에서’는 전후 일본 요코하마 근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출생의 비밀’에 얽힌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한국 TV 드라마의 폐해가 지브리에도 닿았나 싶을 정도로 진부한 내러티브의 영화였죠. 카토리 싱고의 신작은 어땠냐고요? 카토리는 극장용 영화보다는 TV 버라이어티와 드라마에서 더 큰 장기를 발휘합니다. 영화는 끔찍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일본의 ‘선진국’에 어울리는 극장 문화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극장은 무척 자유로운 공간입니다. 휴대전화가 사정없이 울려대는 것은 보통입니다. 옆 사람이 있건 말건 그들의 은밀한 사랑을 확인하는 청춘 남녀들도 여럿 발견됩니다. 컴컴한 극장에서 엔드 크레딧이 미처 올라가기도 전에 대개는 바쁘게 극장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영화를 온전하게 끝까지 다 즐기고 싶은 다른 관객들의 볼거리 따윈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일본은 다릅니다. 전화 벨 소리는커녕 시선을 분산시키는 휴대폰 조명도 일절 목격되지 않더군요. 엔드 크레딧이 다 돌고 극장의 조명이 밝혀진 후에야 그들은 비로소 의자에서 일어납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유독 부럽고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유가 뭔지 궁금해집니다. 외국에 비해 유독 싼 한국의 영화 관람료나 일본 특유의 ‘전체주의’ 국민성 등으로 치부하는 것은 이제 닳아빠진 비유입니다. 딱 한 번만 생각해 봅시다. 자신의 보고 즐길 권리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보고 즐길 권리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선진국이고 선진 문화입니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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