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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대화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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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기자라는 직업 속성상 참으로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성격이 소심하건 대범하건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취재원들과 수없이 부딪히고 부대끼며 그럴 듯한 볼 거리와 읽힐 거리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기자의 임무이자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취재원을 일 대 일로 만나는 인터뷰라는 형식을 주로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인터뷰이(interviewee)에게 의미있는 토픽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문화, 예술계 쪽을 오래 동안 담당한 저는 통칭 '연예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대할 때는 여느 취재원들과는 다른, 보다 세심하고 치밀한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배우들이 매체들과 인터뷰를 갖는 경우는 그들의 신작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등이 오픈을 앞둔 시점입니다. 가능하면 많은 매체에 그 신작이 홍보되기를 원하는 제작사들은 이 배우를 호텔 방에 가둬 놓은 채 하루 종일 인터뷰를 돌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이 배우와의 인터뷰에서 특별한 것을 뽑아내기란 마치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파김치가 된 인터뷰이와 그에게서 뭔가를 '뽑아 먹어야 하는' 기자란 가련하고 불쌍한 악어와 악어새 같기도 합니다. 배우의 지명도가 높을수록 인터뷰 과정은 더욱더 피말리는 싸움이 됩니다. 대부분의 '뜬' 배우들은 인터뷰와 기자 자체를 혐오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인급은 매니지먼트의 과도한 컨트롤과 신인다운 '무지함'과 '무경험'에 기인해 "예, 아니오" 식의 단답형 대답만을 내놓곤 합니다. 기자로서는 가장 등골이 오싹한 순간입니다.
이를 어느 정도 푸는 해법은 있습니다. 인터뷰하는 시간만큼은 철저히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와 대화를 나눈다고 여기면 됩니다. 바로 동정(compassion)입니다. 배우와 기자 사이의 공적인 인터뷰가 아닌, 친구 혹은 선배, 후배와 갖는 편한 잡담 정도로 인터뷰 수준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벽을 무너뜨리는 과정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뛰어드는 것은 자살 행위입니다. 질문 후 바로 노트북 화면에 머리를 들이박는 것도 절대 피해야 합니다.

상대와 물리적인 눈높이를 맞추면서 그의 현재 고민을 상담하는 카운셀러 역할도 하면 좋습니다. 그에 대한 철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한 것은 물론입니다. '누구는 밀란 쿤데라의 단편을 좋아한다더라''누구는 자동차 개조에 환장했다더라' 등 인터뷰이에 대한 고급 정보는 인터뷰를 풀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준비한 거리가 다 떨어진 절체절명의 시간, 밀란 쿤데라 카드를 꺼내며 저와 동갑인 인기 여배우로부터 감춰진 인생 스토리를 끄집어냈던 경험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대화의 기술, 아니 예술일 것입니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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