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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북아프리카 민주화 격랑 속 해외건설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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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그을린 얼굴로 현지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모래바람을 이겨내는 이들. 중동지역 현장엘 가보면 만날 수 있는 우리 건설업체 임직원들의 모습이다. 섭씨 45도 안팎의 폭염이 일반적인데도 "이 정도는 선선한 날씨에 속한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뒤로는 행여나 안전사고가 날까, 품질엔 차질이 없을까 노심초사하는 그들이다.

먼 이국 땅, 척박한 곳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부가가치를 모국에 안겨준다는 자긍심도 배어난다. 벌써 20년 이상을 해외 현장에서만 근무했다는 한 건설사 임원은 "급여와 복지가 크게 좋아져 이제 살 맛 난다"고 말했다. 4개월마다 보름씩의 휴가와 추가 근무수당이 주어지고 에어컨에 스크린골프장까지 갖춘 숙소는 더할 나위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은 쉽게 해외근무를 자처하지 않는다. 취업난이 심해져 바늘구멍을 통과한 유능한 신출내기들도 막상 근무지를 선택하라면 국내현장이나 본사를 선호한다. 더욱이 정정이 불안한 북아프리카와 이란, 이라크, 필리핀 등지라면 손사래를 치게 마련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입사한 선배들과는 달리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난 젊은층이 괜스레 현장난입이나 납치, 전쟁 등의 위험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지 않을 거란 예측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나 어쩌랴. 해외건설수주 700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수주고를 자랑하지만 소위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나라에서 따낸 물량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어쩔 수 없이 건설회사는 자원만으로 현지 근무 직원을 채울 수 없다. 본인의 동의를 받는다지만 '근무명령' 형태로 직원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 치안이 안정된 나라에서 수주고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미국이나 일본 등지의 까다로운 각종 규제가 걸림돌이지만 보다 적응력을 높이고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한다면 선진국 진입이 난공불락의 요새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단기성과에 급급해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일본 건설업체들의 미국이나 유럽시장 공략사를 벤치마킹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조언이다.
유명한 미국의 벡텔이나 플루어다니엘, 일본의 타이세이나 카지마 등이 소위 선진국에서만 건설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않는다. 부가가치가 높은 프로젝트라면 개도국, 후진국에도 달려간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포트폴리오 구성은 안정적이다. 어디 '몰빵'을 하지 않는다. 안전하고도 생활수준이 높은 지역을 위주로 진출하면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를 고른다.

이에 비하면 우리 건설업체들은 빛나는 수주고를 거두고 있지만,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저부가가치 형태로 평가받는 시공분야 업무가 많다. 시공을 위해서는 인력과 장비 동원, 자재구매 등이 필수적이어서 비용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들어 설계부터 구매, 시공에 이르는 플랜트 수주가 늘어나긴 했다. 그러나 수주동향을 보면 벌써 몇십년째 건설업 선진화와 기술력 향상을 외쳐왔음에도, 주도면밀하고도 장기적인 투자와 그에 따른 성과가 부족하다. 여전히 핵심기술에서는 선진국의 80%수준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평가가 건설업계 내부에서 나올 정도다.

이제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 예멘 등지로 민주화의 물결은 확산돼 가고 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어느나라에서나 분명하게 보여주듯 거스를 수 없다. 사하라 북부와 중동 일부지역에 이어 사하라 중남부와 동남아 등지로 그 여파가 확산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만큼 이들 나라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우리 건설사 임직원들의 신변에도 위험경보가 켜질 수밖에 없다.

당장 건설사들로서는 이들 나라에서 지금까지 일궈놓은 주요 인맥을 잃어 영업기반이 허약해지게 됐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과거 부패 독재정권의 유산을 계승할지도 의문이다. 독재자들이 시작한 공사에 대해 공사비 지급을 거부할 경우엔 고스란히 투자비를 날릴 수 있다. 현지 진출한 업체들의 비상상황실에서 이런 부분까지 대응책을 만들어야 할 상황이다.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차제에 이번 아프리카 북부지역의 민주화 바람을 계기로 건설업계의 해외진출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해외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고 선진국 진입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악조건을 뚫고 기어이 이뤄내고야 마는 건설인들의 '뚝심'이 자랑스럽긴 하지만, 우리의 소중한 인재를 아끼고 부가가치를 살뜰하게 챙기기 위해서라도 보다 안전한 환경의 프로젝트 수주가 늘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소민호 기자 s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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