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부장관 "동맹의 새 장" 긍정
전임 주한미국대사 "장기적으론 동맹 이완"
유명희 "불확실한 과정의 시작일 뿐"
우리나라와 미국이 공동으로 관세·안보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를 발표한 다음 날인 15일 미국 내 평가가 엇갈려 나오고 있다.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취지의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가 하면, 일각에선 디테일과 장기적 판단의 부재 등을 지적하며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크리스토퍼 랜도 미 국무부 부장관은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애틀랜틱카운슬·코리아소사이어티 공동 주최로 열린 '밴플리트 정책 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양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0월 말 한국 국빈방문과 관련해 역사적인 조인트 팩트시트를 발표했다"면서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됐다"고 했다.
이어 랜도 부장관은 "여러분들이 이 팩트시트를 꼼꼼히 읽어보길 바란다"며 "여기에는 향후 양국 관계의 공동 우선순위가 제시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번 팩트시트에 핵심 산업의 재건 및 확장, 외환시장 안정 유지, 상업 협력 강화, 상호주의적 무역 촉진, 경제 번영 보호, 한미 동맹의 현대화, 한반도 및 역내 현안 공조, 해양 및 원자력 파트너십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고 강조했다. 이어 "(팩트시트는) 한국이 미국 내 주요 투자국 중 하나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미국의 일자리를 지원하고 미국의 에너지 수출을 확대하며 신뢰받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양국의 해양 파트너십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미국대사는 팩트시트의 일부 내용으로 포함된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주목하며 오히려 장기적으론 동맹의 이완을 야기해, 의도했던 결과를 낳지 않을 것이란 의견을 내놨다. 동맹의 현대화가 양국의 안보 관계를 당장은 더 가까워지도록 만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로의 초점이 달라지고 한국의 역량이 강화되면서 서로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랜도 미 국무부 부장관이 참석한 같은 포럼에 나가 한국의 미국산 무기 구매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가 전부 이뤄질 경우 "이 모든 건 단기적으로 (한미 간) 통합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더 길게 보면 분리가 더 이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미국은 초점을 다른 데에 둘 것이고 한국은 이 모든 조치 덕분에 북한을 더 쉽게, 더 자신 있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초점이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북한이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했지만 이제는 훨씬 더 (초점) 범위가 넓으며 다른 유형의 관계"라고 진단했다.
지금까지는 한미동맹이 대북 억제를 최우선으로 했지만, 이제 미국은 더 큰 위협인 중국에 집중하도록 전략적 유연성을 원하고 있고, 한국의 국방력을 강화해 대북 억제를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면서 동맹 관계가 "변형"을 거치고 있다는 평가다.
그는 팩트시트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한 것을 두고도 "김정은이 (대화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실제로 더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미 무역 합의에 대해서는 "여러 면에서 일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도 얻은 게 있다"면서 핵추진 잠수함과 핵연료를 두고 "이 두 개는 한국이 윤석열 대통령 때, 그리고 이제 이재명 대통령하에서 몇 년간 매우 강하게 요구해온 사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이 유럽연합(EU)과 달리 미국과의 무역 합의를 실제로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해 합의의 세부 내용까지 확정해 문서에 담고자 했고, 그 때문에 오히려 불리해졌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U는 '(미국과 무역 합의를) 서명하겠지만 이건 사라지거나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한국 방식대로 모든 걸 문서화하려고 하고, 이걸 정말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좀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U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미국의 관세 압박 때문에 체결한 불공정한 합의를 이행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판단해 합의를 두루뭉술하게 했지만, 한국은 명확한 합의 문구를 통해 스스로를 속박했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한미 무역 협상을 담당했던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같은 포럼에서 "공동 팩트시트는 최종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길고 불확실한 과정의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팩트시트엔 미국의 관세 인하와 우리나라의 3500억달러 대미투자 계획의 세부 내용이 명시됐는데,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금액의 현금 투자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유 전 본부장도 그 점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양국 정부가 양국 모두에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구체적인 투자 프로젝트를 어떻게 선정, 관리하느냐에 많은 게 달려 있다. 이 합의가 견고하고 지속 가능하려면 미국의 제조업 발전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전략 분야에서 양국 모두의 성장과 혁신을 지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유 전 본부장은 "진짜 시험은 앞으로 있을 것이고 이건 정말 가본 적이 없는 길"이라면서 "한국에는 이런 엄청난 양의 자원을 미국에 투자하면 우리 자체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를 초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대미 투자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할 수 있다면 이런 투자는 한국의 제조업 기반을 약화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미국이 제조업 분야, 특히 전략적 첨단 산업을 재건하는 데 있어서 협력할 수 있는 정말로 훌륭하고 소중하며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며 "한국 같은 훌륭한 동맹이자 제조업 파트너와 무역 마찰을 일으키기보다는 우리의 노력을 양국의 산업·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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