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장소와 핵연료 재처리를 둘러싸고 뚜렷한 이견을 보이며 관세와 안보 팩트시트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기술 이전과 안보 규제가 핵심 쟁점으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원자력 통제권'과 '수조 원대 경제효과' '장기 운용 체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양국이 쉽게 양보하기 어려워지면서 원잠 협력 양해각서(MOU)와 공동 팩트시트 발표도 지연되고 있다.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우라늄 농축 등 이견
14일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당초 정상회담 직후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던 원잠 협력 MOU와 조인트 팩트시트는 양국 정부 간 이견으로 조율이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원잠 건조 장소를 둘러싼 전략적 이해 충돌뿐 아니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우라늄 농축 등 민감한 원자력 문구를 둘러싸고 미국 내부에서 강한 반대가 제기되면서 발표 일정 자체가 뒤로 밀리는 상황이다.
특히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이 공동 설명자료 초안에 포함돼 있던 '한국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관련 문구'를 삭제하자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트닉 장관은 이 사안이 "양국 정상 간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삭제를 요구하고 있으며, 국내 정치권에서는 '상무장관의 몽니'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미국 내 상업용 원전·연료주기 산업의 이해관계가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만 러트닉 장관은 '한국 내 선체·원자로 제작' '미국의 봉인 핵연료 제공' 등 원잠 협력의 골격에는 이견을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민감도가 높은 재처리·농축 문구에 집중돼 있으며, 이로 인해 전체 문서 공개가 늦어지고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 발표 지연까지 이어지는 현 상황에 대해 미국 측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미국?…건조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
건조 장소를 둘러싼 양국의 입장차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와 산업계는 국내 건조가 가장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굳히고 있다. 한국은 조선·원전·기계·소재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의 기반을 갖추고 있고, 잠수함 건조는 설계·선체 제작·원자로 설치·통합시험 등 고도의 시스템 엔지니어링이 필요한데 국내 조선소와 연구기관의 역량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 건조할 경우 일정 단축, 비용 통제, 장기 정비 체계 자립 등 여러 측면에서 이점이 크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원잠 기본설계를 마무리 중이며, 잠수함에 투입될 원자로가 결정되면 상세설계에 돌입하게 된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 공학과 교수는 "우리는 원전 설계 기술이 세계적이지만 잠수함 원자로는 환경이 다르다. 흔들림·기울기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검증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도 "돈과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면 5년 안에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막대하다. 원잠 건조는 수조 원에서 수십조 원대의 사업으로 건조 과정뿐 아니라 정비, 부품 국산화, 운용지원 등 운영 비용까지 고려하면 산업 전반에 미치는 효과는 더욱 커진다. 고성능 철강, 특수소재, 계측기, 전자장비 등 국내 공급망 전반에 매출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만큼 정부는 '경제효과의 국내화'를 전략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입장은 다르다. 최근 미국 조선업은 인력 부족과 생산능력 저하로 군함·잠수함 인도가 계속 지연되고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물량 확보'가 조선업 재건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원잠 건조를 미국에서 수행할 경우 일자리는 수천 개가 창출되고 장기 방위산업 매출이 확보되지만, 건조를 한국에 넘길 경우 그 이익이 해외로 빠져나간다. 미국이 건조 장소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기술 통제 문제는 양국 간 간극을 더욱 키운다. 원잠은 핵연료, 추진 원자로, 연료주기 관리 등 민감 기술이 집약된 전략무기다. 미국은 원자력 추진 체계 기술 이전에 극도로 신중하며 고농축 우라늄(HEU) 제공은 미 의회 승인과 별도 협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문 교수는 "미국은 19.75%만 돼도 대량일 경우 무기 전용 위험이 있다고 본다"며 "이 문제는 미국 내부 조율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미국 조선업의 현실적 한계를 핵심 변수로 꼽았다. 그는 "미국은 지금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인력과 역량이 많이 떨어져 있다. 언제 만들어서 우리한테 줄지 불확실하고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3개국 안보협의체)도 계속 딜레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잠은 한 번 건조한다고 끝이 아니다. 이후 수리도 해야 하고 새로운 것도 만들어야 하는데 직접 건조 경험이 없으면 정비 의존도가 미국에 고착된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됐다. 강선영 국민의힘 의원은 "원잠은 5~10년마다 오버홀(대규모 정비)을 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건조하면 정비 때마다 2년 이상 미국 조선소에 머물러야 한다"며 "이런 구조는 곧 작전 공백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결국 한미 원잠 논의는 기술·통제·산업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기간에 결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산업적 이해와 원자력 문구 조정이 변수로 떠오른 만큼, 우리 정부가 협상 목표와 우선순위를 더욱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문 교수는 "결국 정부가 목표 시점을 어디로 잡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빨리 전력화를 원한다면 그에 맞는 선택이 있고, 독자 역량을 키우려면 다른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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