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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도 거절했던 논문'…30년 연구해 노벨상 탄 사카구치 시몬 [일본人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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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절 T세포' 존재 밝힌 사카구치 시몬 교수
비주류로 논문 거절 여러 번…30년 한우물
자가면역질환·암 정복 가능성 커져

일본에서는 올해 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한 해에 노벨상 수상자 2명이 나온 것은 10년 만이라고 하는데요. 특히 화제가되는 인물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명예교수입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믿지 않았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30년을 연구해온 결실을 노벨상으로 받게 된 것인데요. 세상이 부정해도 끝까지 본인의 연구를 이어왔던 과정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사카구치 시몬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사카구치 교수는 1951년 시가현에서 태어나 1976년 교토대 의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이번 노벨상은 '조절 T세포'에 관련한 연구로 받았는데요. 이것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외부로 들어온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침입자로 여기고 공격합니다. 백혈구 속 T세포가 이를 담당하는데요. 그러나 이를 오인하게 되면 우리 몸의 장기 등 아군을 공격하게 되죠. 류머티즘성 관절염이나 제1형 당뇨, 루푸스와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이 때문에 발생하게 됩니다. 과도한 면역반응이 생겨나 발생하는 부작용이죠.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명예 교수가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받고 있다. NHK.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명예 교수가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받고 있다.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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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절 T세포는 면역세포들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정상적인 세포를 침입자로 여기지 않도록 하는 '면역관용'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세포죠. 이 조절 T세포를 컨트롤할 수 있다면 알레르기부터 자가면역질환, 암까지 정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는 어떻게 시작된 것이었을까요? 사카구치씨는 교토대 의학부 졸업을 앞두고 생각이 많았다고 해요. 의학부에서 그대로 대학병원 의사가 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임상의가 되는 것보다 대학원에 가서 연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고 합니다. 연구자로 재능이 없으면, 시골에 가서 의사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교토대에서 병리학 연구를 선택했습니다.


1977년 연구를 하던 중 그는 우연히 논문 하나를 보게 됩니다. 태어난 지 3일 된 쥐의 흉선을 제거하자, 큰 감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몸 이곳저곳에서 염증반응이 일어났다는 논문입니다. 흉선은 몸속의 침입자를 공격하는 T세포를 만드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왜 흉선을 제거했는데 갑자기 T세포가 역으로 아군까지 공격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사카구치씨는 '공격을 억제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세포도 흉선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조절 T세포의 존재를 일단 가정한 것이죠. 이를 증명하려고 교토대 대학원을 중퇴하고, 아이치현 암센터로 아예 적을 옮겨 연구에 몰두합니다.

1985년 이를 지적하는 논문을 발표했지만, '조절 T 세포'라는 것을 확실히 찾아낸 것은 아니어서 반응은 싸늘했다고 합니다. 가설뿐이라는 비판도 있었죠. 성과를 내기 위해 미국에 건너가 연구를 지속했지만, 증명 불가능한 비주류 연구라며 큰 지원도 받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10년 동안 주요 과학지에 연구가 게재된 적도 없었다고 해요. 이렇다보니 연구비가 충분하지 않아 조교를 두지도 못해 아내가 사실상 연구 조수 역할을 도맡았다고 합니다. 실험용 쥐까지 아내가 맡아 키웠다고 하는데요. 주변에서는 '아직도 그런 거 연구하느냐'라는 핀잔도 있었지만 '세상이 부정해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맞다'는 신념으로 실험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기자회견에서 아내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사카구치 교수. NHK.

기자회견에서 아내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사카구치 교수.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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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연구하던 중 조절 T세포의 존재를 드디어 밝혀내게 됩니다. T세포는 T세포 표면에 붙은 단백질의 종류로 구별이 된다고 합니다. 다른 면역 세포에 공격하라고 촉구하는 T세포 중의 10%는 'CD25'라는 분자를 표면에 붙이고 있었다고 해요. 이것이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보고, 쥐를 가지고 실험을 해봤다고 합니다.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분자를 제거하니 다시 자가면역질환과 염증이 일어났던 것이죠. 조절 T세포의 존재가 조금씩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조차도 초반엔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995년 논문을 발표했는데, 네이처 등 저명한 잡지에서는 게재를 거절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여러 군데 보낸 끝에 다른 과학지에 게재됐었다고 해요. 노벨상을 받은 연구가 발표 초반에는 그다지 주목도 받지 못했다는 것인데요.


사카구치씨의 논문은 미국의 저명한 연구팀이 추가 실험으로 조절 T세포 존재를 확인하면서 다른 국면에 접어듭니다. 그간 가설로만 여겨졌던 조절 T세포가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이후 이 분야는 최첨단 연구로 올라서게 됩니다. 사카구치씨는 이후에도 2003년 조절 T세포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증명하는 등 꾸준히 한 우물을 파죠. 그리고 이번 노벨상까지 이르게 됩니다. 제대로 평가받는 데만 거의 30년이 걸린 셈입니다.


사카구치씨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좌우명으로 '소심(素心)'을 꼽기도 했는데요. 본래 지니고 있는 순수한 마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꾸밈없이 솔직한 마음으로 연구에 시간을 들여 정진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그가 예전에 의대 수험생들에게 조언하는 인터뷰도 덩달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시 그는 "공부는 나를 납득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다. 연구도 그렇고 학교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는데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비주류로 평가받으면서도 꿋꿋하게 한 길을 걸어간 뚝심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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