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금융·세제 지원으로 성장
정부, 제도개선·투자접근성 확대 추진
배당 세제 개편 움직임도 긍정적 신호
한국 상장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시장의 규모가 일본의 17분의 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입 시점은 1년 차이인데, 시장의 성장세는 비교가 불가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세제 개편 없이는 근본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한국리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상장 리츠 수는 57개, 시가총액은 133조9000억원이다. 반면 한국은 24개, 7조9000억원에 불과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리츠 시장 규모를 보면 일본은 2.2%, 한국은 0.3% 수준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대비로도 일본이 4.9%, 한국이 0.7%에 그친다. 상장 리츠 제도 도입 시기는 일본이 2000년, 한국이 2001년이다. 불과 1년 차이지만 시장 격차는 이미 17배까지 벌어졌다.
일본 리츠 성장의 비결, 스폰서 리츠와 정부 지원
전문가들은 일본이 앞선 배경으로 대형 금융그룹 중심의 '스폰서 리츠'를 꼽는다. 미쓰이스미토모, 미쓰비시UFJ 등 주요 금융그룹이 보유한 핵심 부동산을 리츠에 현물출자 하고, 자산운용까지 직접 참여하면서 시장에 안정성과 신뢰를 심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약 13년간 6조2000억원 규모 리츠 주식을 매입하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정부도 리츠가 부동산을 취득할 때 취득세 과세표준을 60% 줄여 실질 세율을 2%에서 1.3%로 낮추는 감면 혜택을 제공했다.
반면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금융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업계가 숙원하는 '리츠의 부동산 취득세 감면' 조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거에는 일시적으로 감면 혜택이 있었지만 2014년 일몰 종료됐다. 또 핵심 자산을 리츠에 현물출자 할 경우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도 발생해 자산 보유자가 리츠 출자를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모 리츠에 한해 과세이연 제도를 도입했지만 까다로운 요건 탓에 실효성이 떨어졌고, 이마저도 2022년 말 일몰됐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일본보다 땅값이 비싸고 여전히 개발수요도 많으며 금리도 일본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단순히 일본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 다만 국민의 자산형성 수단을 다양화하고, 기관투자가 중심에서 일반 투자자까지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리츠 제도 자체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와 정부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국도 리츠 활성화 나섰지만…
최근 우리 정부도 상장 리츠 활성화를 위해 제도 손질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국민의 상장 리츠 투자 촉진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 연구 용역을 한국부동산분석학회에 맡겼다. 일반 국민이 상장 리츠에 더 쉽게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 전반을 재정비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국토부가 구상 중인 주요 개선 방향에는 상장 리츠의 코스피200지수 편입,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 프로젝트 리츠 활성화를 통한 민간 개발 유도, 연금·IRP 등 중산층 자산의 리츠 투자 확대 등이 포함된다.
정부는 자본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연결하는 '건전한 자금 순환 구조'의 핵심축으로 리츠를 키울 계획이다. 이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배당 확대 및 세제 개편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국거래소를 찾아 국민이 주식 투자를 통해 중간 배당도 받고 생활비도 벌 수 있게 배당 세제를 개편하겠다고 예고했다. 주식시장에 대한 국민 참여를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다. 높은 배당 성향이 특징인 리츠에도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이다. 배당소득세 부담을 줄이는 조치가 도입될 경우 리츠 투자 매력이 높아질 수 있다.
"리츠 제대로 키우려면 세제부터 손봐야"
정부의 움직임과 달리 업계에서는 세제 개편이 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리츠협회는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정책 건의서를 통해 취득세 감면과 현물출자 시 양도소득세 과세 이연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리츠협회 관계자는 "기존 상장 리츠에도 현물 출자 시 과세 이연을 허용해야 유상증자 없이도 자산 편입이 가능해져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도입한 '프로젝트 리츠'에 대해서도 "프로젝트 리츠에 국한된 과세 이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 입장이다.
리츠 간 합병 제한도 시장이 성장하는 데 걸림돌로 꼽힌다. 현행 상장 리츠(공모 리츠)는 공모 예외 리츠(주로 사모 리츠)와의 합병이 막혀 있다. 우량 비상장 자산을 편입하려면 별도 자금 조달을 통해 직접 매입하는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상장 리츠의 대형화와 경쟁력 확보를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지난해 이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6·17 리츠 활성화 방안'을 내놓기도 했으나, 관련 법 개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달 '부동산산업 선진화를 위한 리츠 정책 설명회'에서 "제도 도입을 위한 관계부처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미국·일본·싱가포르 등을 참고해 한국 실정에 맞게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장 리츠의 주가가 유상증자를 할 때마다 급락하는 것도 문제다. 상장 리츠는 보유 현금이 거의 없어 신규 자산을 편입하려면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유상증자 이후에도 배당률이 유지되는데 주가가 하락하는 것은 기관투자가들이 기존 리츠 주식을 팔고 증자에 참여하는 구조 탓"이라며 "유상증자 절차를 단축하고 기관의 대체투자 한도를 조정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츠협회 관계자는 "국민 누구나 우량 부동산의 지분을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리츠는 공공성과 자산 형성 기능을 모두 갖춘 제도"라며 "정부도 상장 리츠 활성화에 나서고는 있으나, 양도세·취득세·배당소득세 등 핵심 세제 지원이 빠진 상태에서 실질적인 성장까지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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