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특수수사통 모인 법무법인 로백스 주도
"홈플러스 자산유동화 단기사채 발행 위법적"
소송 참가인 확대…금융기관도 소송 대상 가능성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돌입한 가운데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 경영진을 상대로 한 집단 손해배상 소송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법무법인 로백스는 홈플러스의 자산 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과 함께 조만간 법원에 '집단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로백스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친 김기동 전 부산지검장,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 등이 소속된 금융 사건 특화 로펌이다.
김기동 로백스 대표변호사는 "30여명의 피해자들과 1차적으로 면담을 끝냈는데 피해 관련 자료를 최대한 많이 확보한 뒤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며 "피해 구제 상담을 요청하는 피해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어서 소송참가인 수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로백스 측이 지적하는 핵심은 홈플러스의 단기사채 발행 과정이 위법적이거나 무리하게 이뤄졌을 개연성이 짙다는 점이다. 로백스 측은 문제가 불거진 원인이 MBK의 무리한 차입 매수로 현금 유동성 부족을 겪던 홈플러스가 거래처에 지급할 대금을 '비정상적' 방식으로 유동화한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홈플러스는 거래처에 자금을 직접 지급하는 대신 '초단기 카드 외상' 방식으로 대금을 결제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 같은 '외상채권' 방식이 카드사와 특수목적법인(SPC), 증권사 등을 돌고 돌아 거치면서 '연 6~7% 고수익 채권'으로 판매됐다는 것이다. 짧은 만기와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보장하는 채권은 저금리 상황을 업고 절찬리에 판매됐다.
문제는 지난 2월28일 홈플러스의 단기신용등급이 'A3'에서 'A3-'로 강등되면서 본격화됐다고 로백스 측은 말했다. 홈플러스는 이에 3월4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는데 이로 인해 유동화된 홈플러스의 단기사채(3월4일 기준 4618억원)는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고 로백스 측은 말했다.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은 이 같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투자에 나섰고, 피해를 봤다는 것이 로백스와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김기동 대표변호사는 "홈플러스 측이 사실상 투자자들에게 '돌려막기용 채권'을 발행했다는 의심이 짙다"며 "2011년 LIG건설과 2013년 동양그룹 사건에서도 채권 상환 불능 위험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관련자들이 중형 선고를 받은 일이 있다"고 말했다.
로백스 측은 소송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이 같은 채권발행과 판매 과정에 개입한 카드사와 증권사 등 금융기관들을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손해는 피해자들이 전부 떠안게 되면서 금융기관들은 사실상 손해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로백스 측은 이와 함께 MBK와 홈플러스 경영진을 상대로 사기 및 배임 혐의를 묻는 형사 고소도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동 변호사는 "소송이 확대되면 금융회사들과 분쟁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에 대형 로펌이 나서기 힘든 구조"라며 "우리로서는 사모펀드의 도덕적 해이와 편법적 자산 유동화 등 여러 문제가 겹쳐 있는 사안이라 사명감을 갖고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서 공동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로백스와 피해자들의 소송 준비와 별개로 MBK와 홈플러스에 대한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검찰은 지난 4월28일 김병주 MBK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 조주연 대표의 주거지와 MBK파트너스 본사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지난달 17일에는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김 회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MBK전단채' 'SKT해킹' 늘어나는 '집단소송', 미국처럼 대상 확대해야
집단소송 제도는 피해자가 다수일 경우 개별 소송이 아닌 하나의 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공통 피해를 본 다수가 함께 배상받자는 취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인정 범위가 매우 좁다. 현행법상 집단소송은 '증권 분야'에만 한정돼 있으며 그마저도 상장회사의 허위공시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2005년 법 도입 이후 본안판단까지 이뤄진 소송은 ELS 289호,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 등 단 2건뿐이다.
반면 미국은 환경, 소비자, 개인정보, 인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집단소송이 가능하다. '클래스 액션(Class Action)'이라 불리는 이 제도는 위법 기업에 천문학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해 많은 기업이 소송 전에 대규모 합의에 나서기도 한다.
지난 1월 애플은 음성비서 '시리'의 개인정보 수집 의혹과 관련해 제기된 집단 소송에서 총 9500만달러(약 1290억원)를 소비자들에게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또 페이스북, 폭스바겐 등의 유사한 사례도 있다. 서초동의 변호사는 "미국 연방증권법상 집단소송 사건 중 80%가량이 합의로 종결된다"며 "소송비용이 엄청나고 배심원들이 기업들에 불리한 심증을 가지고 있다 보니 화해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식 집단소송 제도가 전면 도입되지 않아 실제 소송은 민사소송법상 공동소송이나 선정당사자 제도(대표 소송인을 정해 일부에만 효력이 미치는 방식)를 활용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법무법인 로백스가 이번에 추진하는 ''MBK전단채' 관련 소송이나 'SK텔레콤 해킹' 관련 소송들은 미국식 집단소송이 아니라 '공동소송'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수십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해도 일괄 판결을 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소송비용부터 입증, 절차 부담까지 크다 보니 피해자들의 참여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식 집단소송 제도처럼 대상 확대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점은 명확하다. 피해 구제에 유리하고, 기업 책임이 강화된다. 손계준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는 "지금은 수백 명이 소송하려면 인적사항·위임장을 일일이 받아야 하는 비효율이 있다"며 "전면 도입될 경우 그런 절차 없이 동일한 피해를 본 사람들이 함께 판결의 효력을 받을 수 있게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특히 기업 등에서 제기하는 우려에는 소송 남발 가능성, 로펌의 이익 추구형 소송 증가, 기업활동 위축 등이 포함된다. 기업 입장에선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법적 대응에 따른 이미지 훼손, 비용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담은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커질 수 있다.
집단소송제 확대 논의는 수년 전부터 이어졌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 SKT 유심 해킹 사태를 계기로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포괄적 집단소송 및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피해자 50인 이상이면 분야 제한 없이 손해배상 집단소송이 가능하게 하는 등 제도의 전면 도입을 담고 있다. 22대 국회에는 이 외에도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집단소송법안',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낸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안' 등 총 3건이 계류 중이다.
법조계에서는 단순한 확대가 아닌 부작용 완화를 위한 대책과 입법 보완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종선 법률사무소 나루 변호사는 "예를 들어 자동차 결함 소송을 진행해도 해당 기업이 관련 서류를 '영업비밀'이라며 하나도 제출하지 않는데,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며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가 함께 도입돼야 집단소송제 확대가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집단소송을 확대할 경우 기업에 대한 형사처벌은 없애는 게 균형이 맞다"며 "민사에 형사처벌까지 더하면 기업이 휘청일 수밖에 없는 만큼 이중·삼중 처벌 구조는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