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허용행위 명확히 정의조차 안돼…환자 위험"
간호계 "업무현실 반영 못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
진료지원인력을 합법화하는 '간호법' 시행을 앞두고 의사와 전공의 등 의료계 내부는 물론 일선 의료 현장의 간호사들까지 곳곳에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2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정례브리핑을 열고 전날 공개된 '진료지원업무 수행에 관한 규칙'을 언급하며 진료지원(PA) 간호사 제도가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환자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PA 간호사의 업무가 45개 행위 하나하나에 대한 정의조차 지금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명확한 정의 없이 PA 간호사에게 허용되는 의료 행위를 단순히 나열만 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배액관 제거'만 해도 배액관의 종류가 다양할 뿐 아니라 수술로만 제거가 가능한 경우도 있는데, 정부 발표엔 단순히 '배액관 제거'라고 명시돼 있어 PA 간호사가 어떤 배액관까지 제거할 수 있는지 정의돼 있지 않다는 게 의협의 설명이다.
현장 의사들도 우려를 표했다. 전북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 과장 A씨는 "PA 간호사를 교육한 주체와 PA 간호사에게 업무 지시를 내린 주체, PA 간호사의 소속이 각각 협회와 주치의, 소속 병원 등으로 제각각 다르다"며 "환자 입장에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에 항의를 해야 하는지조차 불분명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의료 행위의 책임 소재를 서로 미루다 보면 의료사고가 생겨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고 우려했다.
서울의 한 의원에서 근무 중인 사직 전공의 B씨도 "이번에 PA 간호사에게 허용된 기관절개관 교체의 경우 실수로 환자 폐에 구멍을 내면 긴장성 기흉을 만들 수 있고, 수술까지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도 입장문을 통해 "PA 간호사 교육을 병원 등 의료기관에 맡기겠다는 복지부의 방침은 무책임하다"고 주장하며 "간호사의 희생을 강요하는 탁상행정을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간협은 "교육 체계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임 간호사의 구두 전수에 의존하는 '비공식 교육'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는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제도적 착취"라고 비난했다.
간협은 또 복지부가 제시한 45개 진료지원 행위 지침에 대해서도 4만여 간호사의 다양한 업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에게 ▲400시간 이상 교육 ▲명확한 자격 기준 ▲법적 보호와 정당한 보상체계 등이 꼭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일선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PA 간호사 제도화가 두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9년차 간호사 C씨는 "그간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한 것처럼 이젠 간호사를 돈은 적게 주고 합법적으로 부려먹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며 "간호사를 보호해주려는 방안은 없고, 책임만 더 지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7년차 간호사 D씨도 "허용되는 행위 중 하나인 골수천자 같은 경우 만에 하나라도 실수하면 대동맥이 찢어져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며 "그럴 경우에 대비한 책임 소재나 법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아직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허용된 행위들에 수가를 제대로 쳐주고, PA 간호사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면 괜찮을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