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청소년 성착취 늪에서 빠져나온 4인이 전하는 말
힘겨웠던 청소년 시절 지나
20대가 된 지금 "더 열심히 살자"

청소년 시절 성착취 피해를 겪었던 무무(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에서 쓰는 활동명)는 24일 ‘성착취, 아웃’ 기획 기사를 취재 중인 기자에게 10년 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손글씨 메모를 전달했다. 메모에는 '열심히 살고있는 2025년 10년 전 나에게 하고 싶은 말, 괜찮아! 언젠가 나아지는 날이 있는거야. 오늘도 힘내!'라고 적혀 있다. 그는 "성착취 피해를 겪은 사람들은 다른 폭력 피해보다 훨씬 더 깊은 어려움을 호소한다"면서 "빠져나오게 하는 방법으로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다 함께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본인제공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후 사회복지사로 성장한 강 씨
"네 잘못이 아니다, 네가 선택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고 10대 시절 저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살다 보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웃는 날도 더 많이 생긴다고요."
강우정(가명)씨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외할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가족과 생활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지만 부모는 그런 강씨를 이해하지 못했고,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시켰다. 15세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결국엔 자립을 선택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강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성착취 범죄의 늪에 빠졌다. 덜컥 겁이 났던 강씨는 청소년 피해자를 지원하는 쉼터에 입소했다.
"처음에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다른 친구와 저를 구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는 중학교 중퇴를 했지만, 그전까지 공부는 잘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 있는 친구들이 모두 나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친구들과 가족이 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안정을 찾은 강씨는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전문대학에 입학한 이후 4년제 대학교에 편입했다. 졸업 후 강씨는 사회복지사가 됐다. 지금은 자신처럼 힘겨운 시절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 현재 출산도 앞두고 있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두렵지만, 곧 태어날 딸은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청소년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하루를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강씨는 "청소년 시절 피해를 겪어도 회복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 돼주는 가정, 가정이 없다면 가정을 대신할 국가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면서 "사회복지사를 하면서 가난의 대물림으로 어린 나이에 성 경험을 시작하고, 조기 출산, 낮은 소득의 직업을 갖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이런 악순환을 끊어주는 사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10대 시절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알코올 중독으로 힘든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유미정씨는 성착취 피해에서 벗어나 이제는 건강한 20대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유씨는 내일이 더 기대되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 10여년 전 자신에게 "너는 점점 감정과 사랑을 배울 것이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너의) 많은 모습이 변하고 즐거울 것"이라면서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할 것이고 또 열심히 하고 있다. 넌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최고"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사진 본인제공
원본보기 아이콘◆ "실패 아니라 시행착오일 뿐"...박 씨가 전하는 메시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박진경(가명)씨는 17살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자퇴 후 집에만 있던 박씨는 우연히 참여하게 된 랜덤 채팅에서 숙식을 제공해준다는 얘길 듣고 무작정 처음 가본 동네로 향했다. 도착해 만난 남녀 커플은 자신을 무척이나 환대해줬다고 한다. 박씨는 그들의 다정함과 친절함에 마음을 빼앗겼고, 새 가족이 생겼다고 느꼈다.
그들은 돈을 벌게 해준다고 박씨를 꼬드겼다. 수락하고 보니 성착취 범죄였고, 이들은 식비, 방값 등을 요구하며 박씨가 번 돈을 받아 갔다. 성매수자로 위장한 경찰에게 붙잡히면서 박씨의 성착취 피해 생활도 끝이 났다. 경찰의 입소 제안을 받아들여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지원시설에 들어가 생활을 시작했다.
"진짜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떠났던 여행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여행도 처음이었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가 궁금한 사람들조차 처음이었습니다."
시설에서 만난 상담가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으며 조금씩 일상생활에 적응해나갔다. 1년 8개월을 그곳에서 지낸 박씨는 "어리기에 실수할 수 있다며 늘 용기를 북돋아 주셔서 감사했다"고 회상했다.
시설에서 만난 친구들이 모두 '해피엔딩'은 아니었다고 했다. 박씨는 "보호관찰 중에 적응하지 못해 도망쳤다가 결국 다시 재판받거나, 시설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서 다시 성착취 현장으로 나가는 친구도 봤다"고 했다.
박씨는 10대 시절 자신에게 "실패한 게 아니라 어리기 때문에 겪은 시행착오일 뿐이다"라며 "지금은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어른들을 만나면서 달라진 삶
"어른들이 '몸을 함부로 굴린다'라거나 '집이 못살아서 그렇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어른들의 잘못이다'라고 꾸준히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14살 때 처음 성착취 피해를 겪었던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의 무무(활동명)는 "성장기에는 나에게 신뢰를 주는 어른을 한 번이라도 만나야 한다"며 이처럼 말했다. 학교생활과 교우 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무무에게는 당시 17살 된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는 학교에 가지 말고 자신의 무리와 함께 지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고, 무무는 이후 성착취 피해자가 됐다.
"내가 피해자인데 피해자임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두렵거든요. '함부로 몸을 판 아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주변에 한 명의 어른이라도 '네 잘못이 아니다, 사회의 잘못이다, 어른들이 잘못한 것이다'라고 말해주면 달라질 수 있어요."
무무는 피해 상담소에서 신뢰할 수 있는 어른들을 만나면서 삶이 달라졌다. 이곳에서 법률적인 문제도 해결하고, 직업 훈련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어보기도 했다. 대학도 졸업했다. 그는 "처음으로 나를 믿어주는 어른들을 만나고 '또다시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면 그분들이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생각을 하니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무무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문제 예방을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교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 회사의 법적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고 꼽았다. 그는 "성폭력 피해로부터 벗어나는데 피해 기간의 10배가 되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면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아동 성착취 문제에 대한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일은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알코올 중독으로 견디다 못해 10대 시절 집을 나와 살던 유미정씨(가명). '가출 청소년'으로 지내던 그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당시 주변의 무시와 멸시를 오롯이 혼자 견디다 성착취 범죄 피해자가 됐다.
유씨는 시설에서 3년간 생활하는 동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누군가가 저를 기다리고 맞이했던 기억이 지금도 소중하게 남아 있다"면서 "집에 들어가기 무섭고 겁이 나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시설에 들어갈 때는 발길이 가벼웠고 그곳을 집이라고 여겼다"고 회상했다.
건강해진 유씨는 "내일은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이 생길지 기대가 많이 된다"며 "조금 더 삶을 즐겁게 살고 싶다"고 했다. 요즘엔 자신을 많이 사랑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도 다짐한다. 또 타인을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전했다.
취재에 응해준 성착취 피해 당사자들의 이름은 신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 디지털 성범죄,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성착취, 교제폭력, 스토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여성긴급전화 1366(☎1366)에서 365일 24시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 관련 상담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청소년상담채널 디포유스(@d4youth)를 통해서도 1:1 익명 상담이 가능합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