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신 고유제로 복원 신호탄
은행나무와 행단 재건
유교문화 상징 공간으로 재탄생
조선 전기의 유학자이자 안동권씨 의성 입향조로 널리 알려진 행정 권식(杏亭 權軾) 선생의 유허지가 600여 년의 세월을 넘어 복원된다. 오랜 시간 잊혔던 유학 정신의 상징이 다시금 숨결을 틔우는 역사적 순간이다.
최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서는 선생의 유허지를 되살리는 복원사업의 첫 단계로, 터에 깃든 혼을 깨우는 지신 고유제가 봉행 됐다. 의성군과 안동권씨 후손, 지역 유림이 한마음으로 참여한 이 행사는, 단순한 복원 그 이상으로 지역 정체성과 역사의식을 되살리는 상징적인 의식이었다.
이번 복원사업은 은행나무 세 그루의 재식재, 학문 수련 공간인 '행단(杏壇)'의 복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권식 선생은 1450년대 단종의 폐위와 죽음을 계기로 벼슬을 버리고 사촌리에 낙향, 직접 은행나무를 심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육 공간을 조성했다.
이곳은 유교의 종조인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친 '곡부의 숲'에서 유래한 이름을 따 '행단'이라 불렸다.
선생은 "공자의 현송은 따르지 못했지만, 그 뜻을 이어 은행나무를 심어 후손이 가꾸게 하겠다"고 시를 남기며 후대의 교육과 덕성을 기원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세월 속에서 이 행단과 은행나무는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후손들과 지역 사회는 오랜 기간 복원을 염원해왔으며, 이번 사업은 그 숙원을 현실로 만드는 첫걸음이다.
복원 대상에는 ▲은행나무 3그루 재식재 ▲행단 원형 복원 ▲유허비 및 안내판 정비 ▲역사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 등이 포함되며, 향후에는 ▲유교 문화 체험 공간 조성 ▲청소년 유학 교육 프로그램 ▲지역 문화관광 자원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권식 선생은 1423년(세종 5년) 안동에서 태어나, 1452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4년 창원향교 교수로 재직하며 백록동규를 기준으로 엄정한 유학 교육을 실천했다.
1457년 단종이 폐위된 후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낙향하여 평생을 사촌리에서 학문과 교육에 헌신했다. 그의 후손으로는 진사 권흠조, 문과에 급제한 권경조, 별제를 지낸 권숭조, 조선 후기 장기현감을 지낸 권희순, 이조판서에 추증된 권수경 등 인물이 잇따라 배출되었다.
1860년 사림의 공의로 건립된 기천리사는 일제강점기 방화로 소실됐지만, 1934년 후손들에 의해 재건된 기천정사(의성군 문화유산 제38호)와 유허비를 통해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권식 선생의 후손들은 "이번 복원이 단순한 기념이 아닌, 선조의 유학 정신과 교육 이념을 오늘날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지역 사회와 후손들이 함께 이 정신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의성군 관계자는 "행정 권식 선생 유허지 복원은 유교 문화 자산의 보존뿐 아니라, 지역의 역사 정체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라며 "교육, 문화, 관광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번 복원사업은 유교의 이상과 교육 정신을 계승하는 문화적 발판이자, 지역민과 후손들의 뜻이 모인 장대한 공동 기억의 복원이다. 다시 살아날 행단의 은행나무는 단지 나무가 아닌, 600년 유학 정신의 상징으로서 새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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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취재본부 권병건 기자 gb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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