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연구진, 고양이 털색 발현 유전자 변이 규명
퇴직 후 애묘인들에게 연구비 모금해 연구
미 연구팀도 유사 결과 발표
고양이 털 색깔을 결정짓는 유전자의 비밀을 파헤치는 논문이 발표됐다. 한국에서 이른바 '치즈냥이'로 불리는 옅은 적갈색 고양이는 대다수가 수컷이어서 지금까지 성염색체인 X염색체가 이와 연관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려졌다. 일본 규슈대 연구팀은 털 색깔을 발현하는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규명했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일본 규슈대 사사키 히로유키(Hiroyuki Sasaki)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고양이의 오렌지색 털을 만드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했다고 1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그레고리 바시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도 같은 학술지에 유사한 결과를 동시에 발표했다.
두 연구팀은 고양이의 피부, 모낭(毛囊), 눈 등의 색깔을 결정하는 멜라닌세포에서 X염색체와 연관된 'ARHGAP36'이라는 유전자의 활성화 정도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오렌지색 털을 가진 '치즈냥이'와 그렇지 않은 고양이들의 DNA를 비교한 결과, 치즈냥이의 ARHGAP36 유전자에서 DNA 일부가 누락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양이의 오렌지색 털은 유전적 메커니즘에 의해 짙은 흑갈색 털 색깔 발현이 억제된 결과라는 점은 수십년간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유전자의 어느 부위가 이런 메커니즘에 관여하는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전자가 정상일 경우 털이 검게 나는데, ARHGAP36 유전자의 일부 조각이 빠져있으면 갈색 색소가 많은 오렌지색 털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결과는 몸 전체가 오렌지색인 '치즈냥이'가 대부분 수컷이고, 삼색 고양이는 대체로 암컷인 사실과도 부합한다. 수컷 고양이는 X염색체가 하나뿐이기 때문에 오렌지색 유전자를 물려받으면 '치즈냥이'가 되는 반면, 암컷은 X염색체가 두 개라 X염색체에 각각 오렌지색과 검은색 또는 흰색 유전자를 하나씩 물려받으면 얼룩덜룩한 털 무늬가 생기는 것이다.
한편 이번 연구는 일본과 전 세계 고양이 애호가 수천 명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연구비 1060만엔(1억200만 원)을 모금해 진행됐다. 사사키 교수는 고양이 애호가로서 "대학에서 은퇴했지만 고양이 질병 극복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주황색 고양이 유전자를 밝히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사사키 교수는 "후원금을 보내준 이들 중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어린이들이 용돈을 모았다며 '삼색얼룩털 고양이(calico cat) 연구에 써 주세요'라고 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반려묘를 키우는 상당수가 털 색깔과 고양이의 성격이 연관이 있다고 믿는다"며 "과학적 증거는 아직 없지만 흥미로운 가설로 더 연구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ARHGAP36 유전자의 DNA 변이가 건강 상태와 다른 신체 부위나 기질에도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해당 유전자는 인간에게도 발견되며 피부암이나 탈모와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그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현정 기자 kimhj20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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