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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김혜연의 AHA] AI 시대, 사진은 여전히 감정을 기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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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사진작가 김용호

편집자주아시아경제는 나날이 발전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예술창작 분야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사람'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공학자와 예술인의 관점에서 고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매월 한 차례씩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와 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 대표)가 예술창작인과 대담하거나 작품에 관해 토론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코너 제목에 들어가는 'AHA'는 'AI, Human & Art'를 뜻합니다. 생성형 AI의 미래를 누구보다 뜨겁게 탐구하는 김대식 교수, 생성형 AI와 무용을 과감하게 접목하고 있는 김혜연 안무가를 통해 AI와 사람, 그리고 예술이라는 묵직한 화두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보시기를 기대합니다.
[김대식·김혜연의 AHA] ⑮ 사진작가 김용호
AI의 시대, 사진의 미래는 여전히 '사람'
기록과 창작 사이, 사진의 본질을 묻다

김용호는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시대를 응시해온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작가다. 드물게 기업 광고와 예술 전시를 모두 아우르며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해온 그는, 인물을 포착할 때 단순한 외형을 넘어 감정과 시대의 초상을 함께 담아낸다.


VOGUE, BAZAAR 등 세계적인 패션 매거진은 물론, 현대자동차, 현대카드, KT, LG전자, GUCCI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과 글로벌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과 가치를 깊이 있는 시각 이미지로 구현해왔다.

사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감정의 연출이자 시대에 대한 사유'라고 정의하는 그는, 백남준, 박서보 등의 거장을 조명한 '한국문화예술명인 전'을 꾸준히 이어오며 예술 사진가로서의 존재감 또한 확고히 해왔다.


최근에는 구찌의 '한국 문화의 달' 캠페인 사진전 <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김수자, 박찬욱, 안은미, 조성진 등 한국 문화예술계의 거장 4인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조명해 주목받았다. 2022년에는 사진 철학을 담은 저서 『포토 랭귀지(Photo Language)』를 출간했고, 2023년에는 영화 de Vermis Seoulis의 감독으로 데뷔하며 작업의 스펙트럼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AI가 이미지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오늘, 김용호는 여전히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장면은 누구의 감정으로 찍힌 것인가?"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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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라는 매체를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어릴 적에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던 적은 없었어요. 단지 집에 우연히 카메라가 있었고, 그걸 다룰 줄 알았을 뿐이죠. '사진을 하겠다'는 명확한 결심보다는,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본능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던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진과 만나게 된 셈입니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의 저는 공부를 특별히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이 아주 오래전부터 무의식중에 쌓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계기나 극적인 순간이 있었다기보다는, 감각적으로 흘러가듯 이어진 삶이 자연스럽게 사진이라는 매체와 만난 거죠. 저는 늘 제 안의 부족함을 채우려 했고, 그게 채워질 때까지 계속 밀고 나갔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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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머셜과 예술 사진을 함께 하시면서 어떻게 독립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했나요?

▲철저한 계획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낸 시간의 총합이라고 생각해요. 상업적으로 매우 분주한 시기에도 파인아트 작업은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개인 전시 같은 활동은 수익과는 무관한 일이지만, 오히려 광고 작업을 통해 생긴 수입으로 시간을 쪼개어 예술 작업을 지속했죠.


백남준 작가님의 작업을 했을 때도 후원이 있는 작업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개인 지출이 훨씬 많았어요. 하지만 그런 열정과 시간, 노력을 기울인 프로젝트들이 이후 예상치 못한 작업으로 이어지거나, 좋은 전시에 초청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광고 사진은 본질적으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부응하고,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해야 하죠. 당연한 일이지만, 저는 늘 그 요구를 뛰어넘고자 했어요. 단지 지시를 충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미지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했죠.


예를 들어 현대카드와의 작업에서는 단순한 이미지 제작이 아니라 화폐의 역사부터 공부했고, 브랜드가 가진 상징과 기호학까지 깊이 탐구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광고이면서도 예술적 서사를 지닌, 독립적인 이미지로 완성됐습니다. 결국 제가 두 세계를 오가며 얻은 확신은 이것이에요. 어떤 방식이든, 작업 안에 '진심'이 담겨야 한다는 것. 예술처럼 보이는 광고, 광고처럼 작동하는 예술?그 경계에서 균형을 잡는 것? 이 저만의 작업 세계를 만든 핵심이었습니다.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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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 사진은 기록인가요, 창작인가요?

▲사람들은 종종 사진을 '찰나를 포착하는 예술'이라 말하죠. 하지만 그 찰나조차도, 사실은 오랜 시간의 준비와 숙고 끝에 탄생한 결과일 수 있어요. 때로는 그 짧은 순간마저도 철저히 계산된 것이죠. 특히 인물 사진은 결코 즉흥적으로 찍을 수 있는 장르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백남준 선생님을 촬영하러 뉴욕에 갔을 때, 저는 출국 전에 관련 전기와 자료를 모두 읽고 갔습니다. 기업의 회장님을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분의 성장 배경, 가족 관계, 그리고 기업 철학까지 미리 공부하고, 인물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추려 노력하죠. 그렇게 쌓은 이해를 바탕으로, 피사체가 자연스럽게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것이 사진가의 연출이자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진은 순간의 예술입니다. 살아 있는 대상의 '지금 이 순간'을 포착하는 감각도 중요하죠. 하지만 그 순간이 빛나기 위해선 수많은 시간의 연구와 인내, 그리고 사전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 노력에 따라 순간의 미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사진은 단순히 셔터를 누르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 축적된 시간과 감각을 응축해내는 예술입니다.


셔터 한 번에 담긴 40년의 준비, 작가의 미학은 곧 '사람을 읽는 눈'

-필름에서 디지털, 생성형 AI까지 사진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었는데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저는 기술의 변화에 크게 저항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갔을 때도 마치 완행열차에서 특급열차로 갈아탄 듯한 기분이었죠. 속도는 빨라졌고, 작업의 효율성도 비약적으로 높아졌으니까요. 지금의 AI 기술도 마찬가지예요. 변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그 시대가 제시하는 새로운 도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최근 교토를 여행하면서, 기술 이상의 어떤 감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순간이 있었어요. 일본은 철도 회사마다 열차의 실내 디자인이 다르더군요. 어떤 열차는 벨벳 소재의 시트에 짙은 초록과 자주색 톤의 클래식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는데, 보통 대중교통에서는 보기 어려운 고급 자재들이 사용된 것이 인상 깊었어요. 정말 근사했고, 동시에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 풍경 속에서 문득 느꼈어요. 이것이야말로 감정과 이성이 공존하는 시대의 태도가 아닐까 하고요. 기술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화하겠지만, 그 안에 사람의 감정, 태도, 그리고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가?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고속열차가 아무리 빠르고 편리해도, 누군가는 여전히 덜컹거리는 완행열차를 찾습니다. 그 안에는 속도 너머의 감각, 낭만, 기억, 그리고 감정이 있기 때문이죠. 저는 사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정교해져도,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담아내느냐'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각이에요.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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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시대에도 작가님이 한 컷의 사진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즘은 누구나 하루에도 수십, 수백 장의 사진을 찍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진의 희소성이 사라졌다"는 말도 종종 들려요. 그만큼 기술이 대중화되었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기술이 보편화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진이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누구나 요리를 할 줄 알지만, 우리는 여전히 외식하죠.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음식과는 다른 맛과 완성도를 원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가격이나 편의성도 이유가 되겠지만, 결국 누군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고유한 감각을 경험하고 싶어서죠.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찍든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릅니다. 사진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과 예술의 문제예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한 컷의 힘'을 믿습니다.


같은 인물을 찍더라도, 누가, 어떤 시선으로, 어떤 마음으로 찍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 가 펼쳐져요. 예를 들어 제가 무용수 김혜연 안무가님을 촬영한다고 가정해볼게요. 단지 무용하는 몸을 찍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그녀가 작품 속 인물로 변신하는 순간, 그 감정의 결을 포착하려는 거예요. 그 안에는 움직임만이 아니라, 그녀가 살아 있는 서사가 담긴 감정의 주체로 존재하죠. 그것이야말로 사진이 기록을 넘어 감정의 예술이 되는 지점이에요.


사람들은 카메라를 흔히 내가 원하는 걸 담아주는 도구로 여기죠. 하지만 어느 날,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장면 앞에서 카메라와 내가 완전히 일체가 되는 순간이 있어요. 마치 나조차 인 지하지 못했던 감정이 셔터를 통해 드러나는 순간이죠. 그때야말로 진짜 작품이 태어납니다. 그건 단순한 기술로는 만들어낼 수 없어요. 그날의 나의 감정, 생각, 날씨, 몸 상태까지…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그날의 나'만이 찍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장면이죠. 저는 그 가능성 때문에, 여전히 한 컷의 사진에 마음을 겁니다.


사진은 기록 넘어 '감정의 연출'...한 컷에 담긴 작가의 고유한 시선

-AI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미술관에 갖다 놓았을 때, 그것은 예술이 되었죠. 하지만 똑같은 행위를 누군가가 반복하면, 그건 단지 '모방'이자 '재현'으로 끝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누가, 언제, 왜 처음 했느냐",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맥락과 의도라고 생각해요.


AI가 만든 결과물도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가질 수 있어요.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빠르게 만들어지니까요. 하지만 저는 감정과 맥락이 결여된 이미지에는 진짜 감동이 담기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아무리 매끄럽고 정교해 보여도, 그 이미지가 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서사가 없다면 마음을 움직이기 힘들어요.


AI는 속도에서 압도적이죠. 물리적 시간이 거의 들지 않으니, 가격이나 소장 가치 같은 문제에서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아날로그 작업은 다릅니다. 한 작품을 위해 수개월, 때로는 수년이 걸리기도 하죠. 그 시간과 정성은 단순한 '결과물' 이상의 감동을 품고 있어요. 그건 시간과 존재가 쌓여 만들어낸 한 겹의 진실 같은 것이죠. 특별히 필름카메라로 작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예술은 단순히 결과물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감상하는 방식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해요. 무용 공연이나 클래식 음악회를 떠올려보면, 우리는 단지 소리와 움직임만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와 함께하는지, 어떻게 차려입었는지, 좌석에 앉아 팸플릿을 넘기는 순간, 그리고 무대 인사를 박수로 함께 맞이하는 모든 과정이 예술의 일부이지요. 그것은 격식이자 감정이며, 이 공연을 만든 이들에 대한 존중과 예의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태도야말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예술의 본질이라고 믿어요. 결국 예술은 결과물이 아니라 관계의 감각, 다시 말해 시간과 사람, 감정이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에요. 조각이나 음악, 회화처럼 오랜 수련과 시간이 필요한 예술과 달리, 사진은 카메라만 있다면 누구든 바로 찍고, 전시까지 시도할 수 있죠. 그 점에서 보면 AI 역시 사진과 유사한 속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거죠. 하지만, 접근이 쉽다고 해서 결과까지 평준화되는 건 아닙니다. 그 안에서도 압도적인 감각과 시선을 가진 창작자들은 분명히 존재해요. 결국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태도와 깊이죠.


저 역시 AI를 활용할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현장에 나가 로케이션을 헌팅하고, 빛과 타이밍을 기다려야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기획 초기 단계에서 AI를 통해 장면을 시뮬레이션 해보기도 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아이디어를 구조화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장점이죠.


그렇다고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대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두 세계가 충돌하고 겹치면서, 그 중간 어딘가에서 새로운 창작 방식이 탄생할 거라고 봅니다. 아날로그의 감 성과 AI의 기술이 유기적으로 융합된, 완전히 새로운 예술의 언어 말이에요. 지금은 그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흥미로운 시기라고 생각해요.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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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시간적 제약 없이 단 하나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무엇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경제적, 시간적 제약이 전혀 없다면, 글쎄요. 궁극적으로는 '불로장생'이 아닐까요.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사신을 해금강까지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집념이 조금은 이해됩니다. 결국 인간이 가장 욕망하는 건 '시간'이라는 자원이니까요.


저도 문득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타임머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런데 누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진짜 타임머신이 있다면,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 이미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어야 하지 않냐"라고요. 그 말을 듣고는 저도 고개를 끄덕였죠. '아, 그렇구나. 이건 안 되는 일이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상상은 오히려 냉동인간 아닐까요? 언젠가 기술이 더 발전하면 다시 깨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저는 '미래를 보고 싶은 마음' 자체가 결국 예술의 본능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고, 기록을 남긴다는 것도 결국은 지금, 이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 하나의 궁극적인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찍는 사진들, 지금 하는 작업들, 지금 꺼내는 이야기들이 결국 시간의 틈 속에 남아, 언젠가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미래의 장면이 되는 거죠. 그게 제 작업의 목적이자 방향입니다.


저는 기업의 CEO를 촬영할 때도 항상 이렇게 말해요. "당신의 미래를 생각해보세요." 사진 찍는 걸 불편해하거나 어색해하는 분들이 많지만, 이 말을 건네면 표정이 바뀝니다. 자신이 걸어온 시간과 앞으로 마주할 미래를 잠시 떠올리는 그 순간, 눈빛이 달라지거든요. 그때 저는 확신해요. "아, 지금 나는 이 사람의 '미래'를 찍고 있구나." 그건 단지 한 컷의 사진 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감정을 기록하는 타임머신 같은 순간입니다.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김용호 사진작가가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무실에서 김대식 교수, 김혜연 무용가와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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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시작하는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사실 저는 '이건 꼭 하지 마라' 같은 뚜렷한 조언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해왔거든요. 어떨 때는 '이게 팔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결국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요. '소년이로 학난성, 일촌광음 불가경(少年易老 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고, 한 치의 시간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젊을 땐 이 말이 잘 귀에 들어오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죠.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잘 노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집중해서, 의미 있게, 효율적으로 즐기세요.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과 감각이 결국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만드는 밑거름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꼭 강조하고 싶은 건 '고전'입니다. 예전에는 그저 관광지로만 보이던 곳들이 이제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장소로 다가오더군요. 뉴욕에 가면 모마(MoMA)도 가지만, 결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머무르게 되고, 파리에서도 퐁피두 미술관보다 루브르 박물관에 더 오래 있게 됩니다. 현대미술관도 좋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 미술의 뿌리를 느끼는 경험은 또 다릅니다.


결국, 진정한 창작의 답은 고전에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이해하는 힘은, 공부와 경험, 그리고 고전에서 길어 올릴 수 있습니다. 그 힘을 쌓아가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김혜연 안무가(여니스트 대표)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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