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시대에 맞는 규제 손질로 금융산업 경쟁력 제고
韓, 은행 '이자장사' 벗어나고 싶어도 규제 가로막혀
빅테크-은행 간 '기울어진 운동장' 해소해야 글로벌 경쟁력 갖출 수 있어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금융개혁이 주요 정치 의제로 부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규제를 조정하고, 은행 건전성 규제 완화,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 구조 전환이 주요 내용이다. 이는 금융이 성장동력의 마중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개혁이다. 한국도 금융정책의 재설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자본과 대출, 소비자 보호와 혁신, 통제와 자율, 규율과 성장 간의 균형적 재설계가 핵심이다. 차기 정부는 금융을 전략산업 육성과 혁신성장을 지원하는 경제성장의 마중물로 다시 작동시킬 수 있도록, 자율성과 혁신을 살리는 '균형 잡힌 개혁'을 해야 한다. 아시아경제는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는 현 상황에서 금융규제의 방향과 과제를 들여다보았다. 본 기획은 '규제를 없애는 개혁'이 아닌,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규제'로의 전환을 핵심 화두로 삼는다.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 자율성과 혁신이 공존하는 균형 잡힌 금융 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1. 미국 시가총액 기준 1위 금융사인 JP모건체이스는 자회사 체이스은행을 통해 2022년 하반기 여행플랫폼 '체이스 트래블'을 출시했다. 출시 1년 만인 2023년 기준 미국 5위 여행사로 성장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레스토랑 추천 및 리뷰사이트, 쇼핑포털 등을 인수하며 여행과 연관성이 높은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 2. 글로벌 투자은행인 미국의 모건 스탠리는 2019년 이후 총 7개의 헬스케어 기업을 직접인수 혹은 투자했다. 헬스케어 산업은 성장성이 높을 뿐 아니라 경기방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모건 스탠리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나아가 모건스탠리는 헬스케어분야의 인수합병(M&A) 추진 및 자문 등을 선도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비금융 산업 진출을 통해 생활금융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처럼 전통적인 은행의 이자수익 모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규제 개선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등 ICT 기기의 보급 확산으로 금융 서비스 제공의 접점이 전통적인 영업점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산업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한국의 현행 제도는 대면 영업을 전제로 한 규제에서 벗어나지 못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통 금융사와 빅테크의 '기울어진 운동장' 해소해야
현행 법제도상 한국 금융산업은 '이자장사'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규제에 가로막혀 비금융 산업으로의 확장이 쉽지 않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상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이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원래 대기업이나 재벌 등의 금융사 사금고화와 계열사 부당지원 방지를 목적으로 제정되었지만, 현재의 금융환경 변화에는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예외적으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통해 KT(케이뱅크), 다음카카오(카카오뱅크) 등 일부에 한해 산업자본의 은행 진입이 허용되면서 규제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전통 금융사는 비금융업 진출이 제한된 반면, 빅테크 기업들은 전자금융법과 인터넷은행법 등을 통해 금융업으로의 진입이 비교적 자유롭다. 은행의 부수업무는 여·수신 등 고유 업무와 관련된 분야에만 한정되며,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에 따른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알뜰폰 사업(KB국민·우리)이나 음식주문 플랫폼(신한-땡겨요) 등 일부만 허용되고 있다. 반면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은 플랫폼 기반으로 은행, 증권, 보험, 선불업 등 금융 전 분야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이에 따라 전통 금융사와 빅테크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같은 은행업을 영위하면서도 다른 규제를 적용받는 현행 제도는 나아가 글로벌시장에서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210개 금융사를 대상으로 '금융회사의 비금융업 영위현황과 개선과제'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금융회사의 88.1%가 해외 금융회사 및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에 있어 비금융업 진출을 막는 국내 칸막이규제가 금융업 경쟁력에 불리하다고 답변했다. 또한, 응답 금융회사 71.5%가 비금융업종도 함께 영위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국 금융·기술·기업가정신센터(CFTE)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글로벌 상위 10대 금융그룹에는 전통 금융사보다는 플랫폼을 기반으로한 빅테크 금융사가 상위 1~3위를 포함해 총 5개 그룹이 올랐다. 또한 종업원 1인당 수익규모를 비교해봐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금융그룹과 기타 금융그룹간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6배까지 벌어진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제도상 주요 금융회사는 수직-수평 소유구조에 제한이 많은 반면, 빅테크는 금융지주사와 달리 이런 제한이 없어 넓은 범위의 업무가 가능하다"면서 "주요 금융회사도 빅테크와 같은 수준의 규제 완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그룹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플랫폼 그룹이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금융복합기업집단법의 개정을 통해 금융플랫폼사업자에 대한 포괄적 모니터링 체계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정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업과 비금융업 간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빅블러 현상으로 비금융사들을 규제체계에 포섭하기 위한 법령 정비가 추진될 필요가 있다"며 "금융그룹에 대해서 금융지주회사법에 근거해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플랫폼 역시 제공하는 서비스가 금융회사와 유사할 경우 지배구조, 내부통제, 건전성 등에 대한 감독상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금융 선진국에선 규제 철폐 움직임 이어져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을 비롯해 일본 등 주요 금융 선진국에서는 금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규제 철폐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미국 역시 은산분리 원칙이 있었으나 1999년 금융현대화법을 시행하며 일정 자본적정성을 갖춘 금융지주사들은 금융업을 보완하는 비금융업무를 직접 영위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 역시 2016년 은행법 개정을 통해 부수업무 범위를 확대하면서 은행들이 지역상사와 광고업, 인력소개업 등 다양한 업종에 진출하고 있다. 일례로 일본의 히로시마 은행과 아키타 은행은 부수업무로 인력소개업을 영위하면서 고령화 및 지방소멸로 인한 지방기업 구인난에 기여하고 있다. 또 일본의 지방은행인 후쿠쇼은행, 아와은행 등은 지역 특산품을 유통하는 지역상사를 자회사로 설립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한편 가상자산 시장이 확대되면서 가상자산이 금융권의 '새 먹거리'로 떠오른 가운데 '1거래소-1은행' 체제 손질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1거래소-1은행' 규제는 자금세탁 방지 시스템에 있어 다은행 간 거래시 확인절차가 복잡해질 위험이 있어서다. 현재 국내 5대 거래소의 경우 ▲업비트-케이뱅크 ▲빗썸-KB국민 ▲코인원-카카오 ▲코빗-신한 ▲고팍스-전북 등으로 제휴 은행이 설정돼있다. 현행 체제에서는 거래소에 따라 입출금이 가능한 은행이 한 곳으로 정해져 있어 투자자 편의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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