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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발량이]현실이 막장일 때 연극은 의미심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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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달리 연극 무대에서는 막장 이야기를 접하기 쉽지 않다.

막장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극적인 연출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실시간으로 실수 없이 진행돼야 하는 연극의 특성상 그런 연출에는 자연스러운 제약이 따른다.

결국 연극은 배우의 연기력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막장 이야기는 때로 배우조차 몰입하기 어려운 상황을 동반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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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달리 연극 무대에서는 막장 이야기를 접하기 쉽지 않다. 막장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극적인 연출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실시간으로 실수 없이 진행돼야 하는 연극의 특성상 그런 연출에는 자연스러운 제약이 따른다.


결국 연극은 배우의 연기력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막장 이야기는 때로 배우조차 몰입하기 어려운 상황을 동반하곤 한다. 배우가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은 관객에게도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막장 이야기는 연극 무대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셈이다. 그렇기에 막장 요소를 걷어낸 연극은 역설적으로, 고귀한 삶의 진실을 탐구하는 예술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는 연극을 바라보는 개인의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연극이 유독 진중하고 묵직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바로 '현실 자체가 막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다.

연극 '베를리너' 공연 장면   [사진 제공= 서울문화재단, (c)이강물]

연극 '베를리너' 공연 장면 [사진 제공= 서울문화재단, (c)이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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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본 연극 '베를리너'가 그랬다. 이 작품은 서울문화재단이 2023년 제정한 제1회 서울희곡상 수상작이다. 2년에 걸친 무대화 작업 끝에 완성됐다. 완성도 높은 연출과 탄탄한 이야기로 '수작'이라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베를리너는 한국의 여성 사진작가 우희와 베를린에서 태어난 한국계 독일인 남자 태조가 가상의 국가 윌마를 방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르는 사이인 둘은 윌마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데, 공항에서 불과 3시간 거리에 있는 가상의 도시 세르고에서 내전이 발발하면서 둘은 윌마 공항에 발이 묶이게 된다. 꼼짝없이 공항에 갇힌 둘이 대화를 나누면서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얽힌다.


태조의 여자친구 유리는 세르고가 고향인 난민이다.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세르고를 탈출해 난민 캠프를 거쳐 베를린에서 태조를 만나지만 베를린 시내에서 발생한 테러로 목숨을 잃는다. 우희는 난민캠프에서 난민들을 도우며 노래하는 버스커를 만난다. 우희는 버스커의 노래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베를린에서 사진전을 앞두고 있다. 태조와 우희가 베를린 장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과거 베를린 장벽이 있던 시절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한 젊은 부부 클라우스와 잉그리드의 이야기까지 겹쳐진다.

연극 '베를리너' 공연 장면   [사진 제공= 서울문화재단, (c)이강물]

연극 '베를리너' 공연 장면 [사진 제공= 서울문화재단, (c)이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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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커플의 이야기가 겹치며 전개되는데 때로 접점이 만들어지면서 연극은 관객의 흥미를 끌어낸다. 그리고 분단, 난민, 테러, 내전 등 묵직한 소재들을 담아낸다.분단, 난민, 테러, 내전 등은 모두 이쪽과 저쪽을 구분 짓는 데서 발생한다. 즉 베를리너는 '경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태조는 애매한 경계인이고 그의 여자친구 유리나 클라우스와 잉그리드 등은 경계를 넘어서려다 고통받는다.

연극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갈라져 갈등하고 대립하는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극단적인 편 가르기를 일삼던 대통령은 결국 탄핵당하며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탄핵당한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막장이었다. 그래서 연극 베를리너는 유독 묵직하게 다가온다.


베를리너의 김재엽 연출은 프로그램 북에 쓴 연출의 변에서 "모든 경계를 넘고 싶어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썼다. 연극이 답답한 우리 현실 저 너머를 꿈꾸듯, 오는 6월3일 대선을 통해 현재의 경계 너머 새로운 정치가 구현되기를 기대해본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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