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해외 동상에 얽힌 이야기들
지도자·전쟁 영웅 동상 많지만
인종차별·백인우월주의로 공과 논란
'백인 남성 동상만 많다' 비판에
여성·흑인 동상도 늘어나
해외에서도 동상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인물의 공과로 논쟁이 이어지기도 하고, 필요 없는 동상을 세웠다는 비판이 잇따르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을 고려해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왜 세웠나' 해외에서도 피할 수 없는 논쟁
해외에서도 인물의 고증이 잘못되거나, 미감이 떨어지는 디자인으로 오히려 불쾌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받는 동상들이 있다. 미국 코미디언 루실 볼의 고향 뉴욕에 세워진 동상은 고인의 생전 모습과 전혀 닮지 않은 데다가, 과장된 표정 때문에 불쾌감을 준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동상 재건립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뉴욕 시민들이 혈세 낭비라며 거세게 반대했고, 급기야 뉴욕 시장도 세금을 쓰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적인 친분을 계기로 동상을 건립했다가 비난받은 경우도 있다.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 풀럼의 런던 홈구장에 세워졌던 마이클 잭슨 동상이 그 예다. 당시 구단주였던 고(故) 모하메드 알 파예드는 잭슨과 본인의 개인적 친분을 과시하며 축구 경기장 앞에 이 동상을 세웠다. 심지어 풀럼에서 158골을 넣었던 전설적인 축구 스타 조니 헤인즈 동상 옆에 이를 세워 가수와 축구 팬 양측의 비난을 모두 받았다. 결국 이 동상은 모하메드가 구단주에서 물러난 뒤 바로 철거됐다.
뜻 기려야 vs 평가 바뀌어 필요 없다…공과 논쟁
1492년 신대륙 탐험에 나섰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은 인물의 역사적 공과가 부각되며 철거 논란 대상이 됐다. 미국 전역에 콜럼버스와 관련한 기념물은 149개로, 미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인물 동상이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 식민지화를 위해 원주민을 잔혹하게 학살한 침략자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여론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콜럼버스 동상은 사실상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으로 굳어졌고, 이 때문에 미국에서 콜럼버스를 기념하는 공휴일인 10월 12일 '콜럼버스 데이' 때마다 콜럼버스의 동상을 참수하거나 끌어내리는 시위대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을 의식해 최근에는 시에서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자체적으로 동상을 철거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기념물은 벨기에 브뤼셀에 세워졌던 국왕 레오폴드 2세의 기마 동상이다. 그는 재임 기간인 1885년부터 1908년까지 현재의 민주 콩고 지역을 본인의 사유지로 선언한다. 코발트, 금, 주석 등 자원이 풍부한 콩고를 세계 유일의 개인 소유 식민지로 만든 것인데, 수탈 과정에서 고무나 카카오 생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일꾼의 가족들까지 손발을 잘랐다. 이때 자행된 강제 노동과 공포 정치 등으로 레오폴드 2세는 '콩고의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1926년 그를 기리기 위한 동상이 벨기에에 세워졌고, 이후 그를 숭상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의 충돌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서 있던 이 동상은 2020년 논란 끝에 결국 철거됐다.
2020년 시위로 전환점…'PC한 동상' 뜨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누구를 동상으로 세울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시작됐다.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면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고 외치는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때 그간 영웅이라고 여겨져 동상으로 만들었던 인물 대다수가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를 앞세웠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동상은 존경의 대상에서 공격 대상으로 변모했다. 흑인 노예를 부린 토머스 제퍼슨, 조지 워싱턴 등 전 대통령의 동상도 공격 대상이 됐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시위대가 전 시장이었던 프랭크 리조의 동상에 불을 질렀다. 그는 시장으로 재임한 1972년부터 1980년까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선처 없이 강경대응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 과정에서 흑인과 성 소수자를 차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동상을 둘러싼 새로운 공론장도 형성됐다. 그간 건립된 동상들의 대부분은 백인 남성의 동상이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만약 지구가 멸망한 상황에서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한다면, 동상을 보고 인류 역사 전체는 말을 탄 남성들로만 구성돼있다고 믿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영국 문화재단 아트UK는 "런던에는 여성보다 동물 동상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반성 끝에 해외에서는 여성, 흑인 등 그간 동상으로 세워지지 않았던 사람들의 동상 건립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2020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 수잔 B. 앤서니,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 소저너 트루스 등의 동상이 추가됐다. 여성 참정권 투쟁의 주요 인물들인 동시에 센트럴파크에 들어선 첫 여성 동상이다. 룩셈부르크와 이탈리아에서는 공공장소에 건립된 여성 동상을 보며 도시를 관광하는 코스를 만드는 예술인 단체가 등장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2023년 이후 건립된 인물 동상 중 3분의 1 이상을 백인 외 인종이 차지했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흉상이나 부조는 제외했으며, 실존 인물을 본 따 건립된 동상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동상을 제외한 평화의 소녀상, 노동자 동상 등은 분석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등 교육기관에 건립된 동상도 제외하고 공원, 기념관 등 공공장소에 건립된 동상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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