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6일은 정치사에 각인된 날이다. 당시 정국의 초점은 서울 시장 보궐선거였다. 정치인을 제치고 대학교수가 여론조사 지지율 40%의 압도적인 1위를 질주하던 시기다. 주인공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차기 서울 시장이라는 권력이 눈앞에 놓인 상황에서 그의 선택은 의외였다. 지지율 3%에 불과했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 시장 기회를 양보했다. 신선한 충격을 안긴 안철수의 선택은 민심을 흔들었다. 그는 단숨에 차기 대선 주자 경쟁력 1위로 올라섰다. 정치인 안철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0년 6월2일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도지사 선거 결과는 여의도 정가를 술렁이게 했다. 진보 개혁 진영의 지원을 받았던 시골 이장 출신 정치인이 보수 강세 지역인 경남에서 도지사 자리에 올랐다. 주인공은 정치인 김두관이다. 그는 창원, 김해, 거제, 양산, 진주, 사천에서 승리했다. 마산, 진해, 밀양에서도 50%에 가까운 득표율을 올리며 선전했다. ‘리틀 노무현’이라 불리던 정치인 김두관의 경남도지사 당선은 차기 대선 구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절정의 순간을 경험한 정치인은 그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용광로처럼 타오르던 지지자의 함성을, 이글거리던 눈빛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대선 주자라면 누구나 그런 기억을 갖고 있다. 그 기억은 정치 인생의 엔도르핀이다. 그 힘으로 정치 인생의 난관을 극복하고, 그것에 취해 정치의 좌표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른바 리즈 시절은 어떤 인물의 황금기나 과거의 전성기를 일컫는 말이다. 영국 프리미어 구단인 리즈유나이티드 FC의 전성기 시절을 빗댄 합성어인데, 우리 삶의 한때를 비유하는 단어로 널리 쓰인다. 일반적으로 리즈 시절은 과거 기억에 머무는 경우가 많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미래에 다시 구현되기도 한다.
정치인 김민석의 사례가 그러하다. 그는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에 출마해 60%가 넘는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미래의 지도자로 주목받았다. 서울 시장을 넘어 청와대의 주인공이 될 재목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인 김민석이 다시 공직선거에서 당선되기까지는 무려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다시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그는 정치 인생의 쓴맛을 경험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민주당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되면서 제2의 리즈 시절을 보내고 있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유력 정치인들이 김민석 사례를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는 대선 레이스를 견인할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지자에게 배척받는 아픔을 경험한 이가 다시 그들의 선택을 받는 과정. 변화의 출발점은 자기 객관화다. 정치인으로서 자기 상품 가치가 어떠한지, 왜 그런 평가를 지금 받는지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는 게 중요하다.
과거의 영광에 기억이 머물러 있으면 리즈 시절을 되살리기 어렵다. 국민이 자기의 무엇을 보며 열광했는지, 지금 그런 행동을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답을 찾아냈다면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국민은 현실 정치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국민의 갈증을 해소할 속 시원한 청량제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길을 찾는 대선주자라면 리즈 시절은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의 영광으로 구현되지 않겠는가.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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